about

새해 첫 주인 1월 1주 차에는 공백 기간을 정리하고 한 해를 맞이하는 글을 적었다. 2주 차는 작업 리듬을 되찾기 위해 짧게나마 그림을 그리면서 소개 페이지를 갱신했다. 내용이 꽤 길고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만, 기분 전환 삼아서.
나 자신에 대해 말하려 하면 항상 어떤 작품을 왜 좋아하는지가 첫째로 떠오른다. 이름, 성향, 좋아하는 책과 영화. 이전에 같은 주제로 떠오르는 작품, 장소, 노래, 음식, 단어 등을 두서없이 나열했던 것을 이번에는 아끼는 목록에 이유를 붙여 적었는데 7년 전과 별다름이 없어서 어이없이 웃겼다. 여전하다고 할까 끈질기다고 할까.

3주 차에는 컨디션이 꽤 나아졌다. 아픈 데는 아프고 그게 또 슬프긴 해도 비관하지 않는다.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지난주에 이어 밑그림이 116p, 선이 106p, 어려워 건너뛰었던 조각들을 채워서 100~104p 음영까지 끝냈다. 내일부터 밑색을 바른다.

반반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작업을 재개했다. 체력이 바닥이라 금세 지쳐서 하루 네다섯 시간이 최대지만 나쁘지 않다.
종이꽃 100-120의 진척 분량은 밑그림이 114p, 밑선이 109p, 선이 104p. 앞선 회차가 남긴 잔감정을 비워내니 한결 수월하다. 마치고 나면 확장편, 둘째그릇까지 새로 그리는 이야기다. 별첨부록은 점선면 편 준비하는 사이에 이어 그리고 싶다.

올해 목표는 열두 달 큰 편차 없이 작업하는 것. 슬럼프라는 이기고 짐이 없는 힘겨루기, 맴을 돌며 마음을 좀먹는 자학의 고리는 끊어내야만 한다.

5(30×4)

지난해의 성과는 꾸준한 독서와 토지 모작이었다.
특히 어릴 때부터 아주 익숙하게 접한 책이지만 완독한 것은 단 한 번뿐이었던, 읽고 싶어서라기보다 내재한 불안에서 벗어날까 싶어 손에 잡은 책을 절반 가까이 읽었다.
토지는 3부 1권(9권)째다. 그렇게 읽고 싶어 했고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번번이 재미 붙이기에 실패하다가 드디어 흐름을 탔다.
이 외에도 여러 소설, 만화, 웹툰을 읽었다. 전보다 폭넓게 웹툰이 가진 다양한 색을 알아보고 이해할 수 있어서 기쁘다.
모작은 와치 원고 전에 매일 30분씩 했다. 처음 얼마간은 잘 모르겠더니 다섯 달쯤 지나자 인체 중심 틀과 전체 구도를 잡는 감각이 조금 생겨서 원고에도 도움이 된다.

와치 시놉시스도 거의 매일 써서 분량이 꽤 쌓였다. 그릇별 시놉시스와 확장편은 서로 연결된 부분 때문에 서둘러 쓰기도 했다.

7년

세 달 사이에 머리카락이 꽤 길었다. 어깨에 닿을 만큼 기르기는 거의 십 년 만이다. 익숙하지 않고 거추장스럽기도 해서 뒷덜미를 자꾸 쓸어보게 된다.
몸무게는 4킬로 줄고 새치가 또 늘었다. 왼쪽 팔과 오른쪽 다리에 건선이 다시 번졌다. 신체 기능이 전체적으로 계속 떨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심적으로도 힘에 부쳤는가 하면 그렇지 않았다. 이 정도는 적당히 참아 넘길 만큼 덤덤해졌다.

다사다난했던 2020년 끄트머리에 마주한 공백은 작가로서 지나온 시간에 대한 슬럼프였다.
내가 결국은 미워한 스물다섯 이전의 삶이 그토록 바랐던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산 7년보다 나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날것의 모양대로 사는 나보다 주어지는 여러 모양으로 살았던 내가, 종종 숨 막혔던 그 삶이 적어도 방종한 인생보다는 쓸만하지 않았을까.
구제할 길 없이 거꾸러진 자리에서 나는 눈과 귀를 막고 가만히 시간만 흘려보냈다.

200

천지 만물이 시작과 끝이 있음으로 하여 생명이 존재한다고들 하고 탄생은 무덤에 박히는 새로운 팻말의 하나라고들 하고 죽음에 이르는 삶의 과정에서 집념은 율동이며 전개이며 결실이라고들 하고, 초목과 금수와 충류에 이르기까지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고들 한다.

이 갖가지 죽음의 처리를 앞두면서, 헛된 탄생에 삶을 잇는 그동안을 집념의 조화는 참으로 위대하여 옷을 걸치고 언어를 사용하고 기기묘묘한 연극으로써 문화와 문명을 이룩하였다고 하는데 그것은 비극과 희극이 등을 댄 양면 모습이며 무덤의 팻말을 향해 앞뒤걸음을 하는 눈물 감춘 희극배우, 웃음 참는 비극배우의 일상이 아닌지 모르겠다.
/ 토지 1부 2권, 박경리

올가미

지난 몇 주가 올해의 최장 슬럼프 기간이었다. 이젤에 늘어놓은 원고는 꼴 보기 싫었고 펜도 잡고 싶지 않았다. 왜 이러고 사는지, 실패 이상의 결과가 있긴 할는지.
내장을 꺼내어 샅샅이 훑고 싶었다. 어긋난 뼈를 쳐서 붙이고 싶었다. 병에건 돈에건 무릎 꿇려서 그 집으로 돌아가게 될까, 숨통이 막혀서는 잘못된 길로 향했었다 고백하게 될까.

내 그림에 갖는 확신은 언제나 얕고 약해서 걸핏하면 부서지고 흩어진다. 의구심은 발목에 걸린 느슨한 올가미다. 무난하게 넘기는 듯싶다가도 사소한 챔질 한 번에 끌려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