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그릇. 종이 위에 피는 꽃 51-60

첫째 그릇. 종이 위에 피는 꽃 51-60 딜리헙 | 포스타입 바로가기

이 회차에 이르러서야 겨우 원고가 안정된 느낌이다. 보정과 편집 면에서 그렇고, 작업 진행 면에서도 그렇다. 51-60화는 진작에 마감했었다.


지난 3월에 연재 제의를 받았다. 그를 계기로 전체 회차를 한 차례 다듬었고 천천히 교체할 예정이다.

슬픔

어제는 슬퍼서 울었다.
울다 울다가 잠들었다. 깨어나서는 또 울었다.

저녁이 되어 원고 앞에 앉았다.
선을 긋는데 문득 눈물이 나서 가만가만 위를 올려다보았다.

“슬퍼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永遠히 슬플 것이오.”
슬픔은 영원히 계속된다….

삶의 본질이 슬픔에 있어서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었을까.

1월 중반부터 2월까지

1월 중반, 처음 겪는 징후로 컨디션이 저조한 가운데 18일부터 29일까지 출혈이 10일 남짓 지속됐고, 기간 역시 전에 없이 길었던 탓인지 후유증도 심했다. 두통과 메스꺼움으로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었고, 한 달 동안 집 밖에 나가지 못했다.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통증이 간헐적으로 느껴졌고, 어느 밤엔 자다가 놀라서 깼다.

공백기가 길어지자 마음이 쫓겼다. 31일부터 2월 2일까지 짧게라도 누워서 책을 읽거나 엎드려서 시놉시스를 썼다. 3일, 2주 넘게 중단했던 원고를 잡았다가 3시간 만에 포기하고 이후 8일까지 얌전히 지냈다. 13일에 다시 선작업을 했다가 14일을 무력하게 보냈고, 15일에 밑색을 발랐다가 16일에 겨우 책만 두 시간 읽었다. 17일부터 19일까지 두세 시간씩 작업했다. 20일부터 23일까지 손을 놓았다. 24, 25 양일간은 다시 독서와 시놉시스, 26일부터 바로 어제인 29일까지 평균 다섯시간씩 채색을 했다.

이 모든 말들이 참 지겹고도 구태의연하다.

그럼에도 이번 고비는 확실한 인식을 남겼다. 저쪽 집에서 나가기로 한 시점부터 작은 작업방이 주어진 지금까지 최소 세 번, 문자 그대로 솜이 나를 건졌다. 내 몸이 과연 버텨낼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 두려웠던 날들조차, 적어도 생활이 비참하지 않았던 건 모두 솜 덕분이었다.
앞으로는 솜을 위해 그리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나와 나의 바람보다 솜을 우선하면서, 그렇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

책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초조한 마음>을 읽었다. 시놉시스는 동고림 확장편인 「진홍과 주명」을 썼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저명한 오스트리아 수필가이자 소설가인 슈테판 츠바이크의 뛰어나고 주요한 작품에서 영화의 영감을 떠올린 앤더슨은 배경과 액자식 스토리 전달 방식만 이용한 것이 아니라 세계의 상실도 물려받았다.
문명의 파괴, 한 시대의 종말, 우리 삶이 우리가 속한 더 큰 역사에 의해 변형되는 끔찍한 방식들…
– 앤 워시번

많은 웨스 앤더슨 영화들처럼 이 영화는 상실을, 우리가 상실에 어떻게 적응하는가를, 혹은 어떻게 절대로 적응 못하는가를 다룬다.
– 매트 졸러 세이츠

종종 이 세계가 물리적 폭력에 의해, 아주 단순한 방식과 저열한 논리를 무기 삼아 돌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Re:

다시, 시작이다. 어쩐지 그런 기분이 든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아니 실제로는 모니터 앞에 앉았지만­― 지난 시나리오를 읽은 뒤 포스타입의 각 페이지에 올렸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혼자만의 다짐이자 간절한 바람인 글들. 언젠가, 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