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표


쉼표가 없는 곳에서 숨을 쉴 것을 지시하는 기호

끝은 때로 예기치 못한 날에,
이제야 좀 볕을 쬐는가 싶어 수면 위로 등을 내보인 순간에
찾아온다.

세번째 이야기는 나의 삶과 맥을 같이 했다. 닻 내릴 곳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다 끝내 가라앉고 마는 지금조차도.
上편을 그린 세 달의 주간 연재 기간엔 실제로 수십 일을 기대앉아 잤고, 바라는 대로 살아지지 않는 삶이 행운일지 절망일지 묻는 경도를 그려내며 들어야 했던 그날의 진심은 선명한 상흔을 남겼다. 이후 세 달에 가까운 침체와 연재 중단을 거쳐 해명과 운도를 만났고, 율기가 조모께 내쳐지는 실상 마지막 편은 작업 중후반부- 7월 8일 집을 나와, 급히 얻은 한 칸짜리 방에서 마감했다.
어떻게 이 흐름을 거부할 수 있을까. 귀엣말 편을 작업하던 도중 와치의 연재 중단을 논의하게 된 이 거부할 수 없는 일체감을. 지극히 현실적인 현실에 대해 인정하는 우인의 말에 동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고작 세시간 사이에 와치를 유보하기로 결심, 스스로도 놀랄만큼 순순히 수긍하고 마음을 갈무리했다.

그리하여
귀엣말 편 마지막 부이의 물음은 원래의 의도를 넘어 그 칼끝을 내게 겨눈다.
나에게 율기는 그림 그 자체를 상징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끝내 그를, 와치를 난도질하고 만 것은 누구인지,
그림에 가장 필요없는 자는 누구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