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빚은을 작업하며 와치 때와는 달라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점은 작품과의 거리감이었다.

와치는 적극적으로 날 이야기 속에 끌어들였고, 나는 부분적으로 그들의 삶을 공유하며 때로는 그들의 자취를 쫓아 걸었다. 이제 돌이켜보면, 나의 위치는 그들의 겹세계에 해당하는 지점이었다.

빚은은 달랐다. 그들은 온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내게 관여하지 않고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하지도 않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덩그러니 이야기와 동떨어진 감각이 낯설었고,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기도 했다.
그렇게 작업을 이어나가는 사이, 어떤 동질감이 나의 위치를 자각하게 했다. 바로 래쉬가 느끼는 외지인의 거리였다.

빚은에서 래쉬는 관찰자 및 기록자로서의 시선을 담당한다. 그가 작품과 연결되는 단 하나의 통로란 뜻이다.
나는 독자들이 그를 통해 어슨을 들여다보며 어떤 이방인의 느낌을 받길 바랐는데, 알고 보니 이야기를 그리는 나 역시도 래쉬를 통해 저 세계를 그려내는 이방인의 위치에 있었던 거다.

이로써 그간 안달해 온 거리감에 대한 고민이 한순간에 불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