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빛

올 상반기엔 다양하게 아팠다. 뜻밖에 알러지 반응이 올라온다거나 급체를 한다거나 약한 식중독 증세를 겪기도 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호흡 곤란도 몇 차례 있었다.

심적으로는 마침내 한계인가 싶은 지점에 다다랐는데, 나는 언젠가 그림을 그만두게 된다면 그 이유는 집에서 강제하거나 생활고로 무너지거나 둘 중 하나이리라 생각했었다. 무력하게 바닥을 찍으면서 자포자기, 그런 예상이었다. 하지만 회복되지 않는 체력과 스스로 착취하고 착취당하는 생활은 의외의 표적을 끌어냈다.
난생처음으로 그림 자체가 미워진 것이다. 이제껏 삶을 지탱해온 동력이 사그라드는 듯, 아주 끝장을 내려는 듯이. 냉엄한 현실이 바닥을 치기 전에 형편없는 내 바닥이 드러난 셈이다. 놀랍고, 두렵고 슬펐다. 극단적 충동으로 고생했을 때와 같이 어떤 형태로도 차마 이 마음을 꺼내놓을 수 없었다.

나는 안 되는 사람인 것을 그만 인정하고 전부 접어버리라며 종용하는 목소리, 익숙한 주장은 항상 과거의 실패를 근거로 든다. 부정하고자 할수록 자기 부정의 함정에 빠져 아등바등 맴을 돌게 된다. 등 배가 뒤집힌 벌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