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3

한해살이풀처럼 연명하는 심정으로 맞이한 8주년, 작가로서도 개인적인 삶 속에서도 그 의미가 남다른 2021년의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더 늦기 전에 뭐라도 해야지 싶어진 나는 드로잉북을 꺼내 들었다. 언제나처럼 가만히 자축하고 넘어가자고 일러스트 밑그림을 끄적이다 손을 놓고는 몇 달을 보낸 참이었다.
그리고 아주 단순한 계기로, 작년 추석 때 화르륵 타올랐다가 네가? 라는 자조적 비꼼에 단념하고 말았던 리퀘스트 이벤트를 단행하기로 했다. 언제 또 내켜서 이렇게 판을 벌일지도 알 수 없는 일, 또 성격상 흐름을 타지 못하고 제쳐두면 그대로 몇 년은 묵혀두니 드물게 긍정하는 사이에 밀고 나가자며 재촉한 것이다.

기념 그림의 틀은 숫자 8 모양과 손거울이다. 거울은 전부터 와치의 상징물 가운데 하나로 꼽아 이야기 안에서도 활용한 바 있기 때문에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와치의 복장은 의도하지 않았는데 좀 매니쉬해졌다. 갓끈과 턱시도 조합이 묘하다 할까, 두꺼운 갓끈이 귀엽길래 신나서 그린 것이 뜻밖에 보닛을 연상시킨다.
무영은 특유의 분위기 자체가 중성적인 느낌이다. 그런 인물이라는 요소를 넣은 기억이 없음에도 그려놓고 보면 항상 비슷한 색감이 배어나온다. 얇은 판유리 수십 장을 접합해 만든 단단한 유리창 같은 사람, 그래서 와치의 중심축은 바로 이 사람이구나, 생각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