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주년

올해는 와치를 쓰고 그린 지 햇수로 9년, 그러니까 8주년 되는 해입니다. 뭣도 없이 여기까지 온 저도 참 끈질기지만, 독자분들도 마찬가지로 끈질기시네요… 고등학생이 사회초년생 되고도 남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말이에요. 눈앞이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고맙습니다, 이렇게 느린 작품을 오랫동안 아껴 주셔서요. 요즘은 잘 지내나, 새 회차가 올라는 왔나 문득문득 들여다봐 주시는 것도 감사하고요.

마음이 갈려 나갈 적엔 그저 괴롭기만 했는데 결국 그 굴곡이 이랑이 되고, 이제는 고랑마다 찰랑하게 물이 차오르는 것을 봅니다. 신기한 일이에요.

2월

이달엔 모든 것들이 아주, 아주, 아주 가파르게 나아졌다. 바닥으로 쑥 가라앉을 때의 기세로 방향을 꺾어 솟아오르듯이.

마지막 화인 110-120의 진행 상황도 꽤 순조롭다. 밑그림은 109p 두 조각만이 남아있고 밑선도 그렇다. 이주에 118,119,120p와 109p의 선 작업까지 마친 뒤 밑색도 끝낼 예정이다. 113~116p 밑색은 지난주에 끝냈다. 마무리 편이라 좀 까다로운 배경 때문에 예상보다 시간이 걸린다.

about

새해 첫 주인 1월 1주 차에는 공백 기간을 정리하고 한 해를 맞이하는 글을 적었다. 2주 차는 작업 리듬을 되찾기 위해 짧게나마 그림을 그리면서 소개 페이지를 갱신했다. 내용이 꽤 길고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만, 기분 전환 삼아서.
나 자신에 대해 말하려 하면 항상 어떤 작품을 왜 좋아하는지가 첫째로 떠오른다. 이름, 성향, 좋아하는 책과 영화. 이전에 같은 주제로 떠오르는 작품, 장소, 노래, 음식, 단어 등을 두서없이 나열했던 것을 이번에는 아끼는 목록에 이유를 붙여 적었는데 7년 전과 별다름이 없어서 어이없이 웃겼다. 여전하다고 할까 끈질기다고 할까.

3주 차에는 컨디션이 꽤 나아졌다. 아픈 데는 아프고 그게 또 슬프긴 해도 비관하지 않는다.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지난주에 이어 밑그림이 116p, 선이 106p, 어려워 건너뛰었던 조각들을 채워서 100~104p 음영까지 끝냈다. 내일부터 밑색을 바른다.

반반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작업을 재개했다. 체력이 바닥이라 금세 지쳐서 하루 네다섯 시간이 최대지만 나쁘지 않다.
종이꽃 100-120의 진척 분량은 밑그림이 114p, 밑선이 109p, 선이 104p. 앞선 회차가 남긴 잔감정을 비워내니 한결 수월하다. 마치고 나면 확장편, 둘째그릇까지 새로 그리는 이야기다. 별첨부록은 점선면 편 준비하는 사이에 이어 그리고 싶다.

올해 목표는 열두 달 큰 편차 없이 작업하는 것. 슬럼프라는 이기고 짐이 없는 힘겨루기, 맴을 돌며 마음을 좀먹는 자학의 고리는 끊어내야만 한다.

5(30×4)

지난해의 성과는 꾸준한 독서와 토지 모작이었다.
특히 어릴 때부터 아주 익숙하게 접한 책이지만 완독한 것은 단 한 번뿐이었던, 읽고 싶어서라기보다 내재한 불안에서 벗어날까 싶어 손에 잡은 책을 절반 가까이 읽었다.
토지는 3부 1권(9권)째다. 그렇게 읽고 싶어 했고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번번이 재미 붙이기에 실패하다가 드디어 흐름을 탔다.
이 외에도 여러 소설, 만화, 웹툰을 읽었다. 전보다 폭넓게 웹툰이 가진 다양한 색을 알아보고 이해할 수 있어서 기쁘다.
모작은 와치 원고 전에 매일 30분씩 했다. 처음 얼마간은 잘 모르겠더니 다섯 달쯤 지나자 인체 중심 틀과 전체 구도를 잡는 감각이 조금 생겨서 원고에도 도움이 된다.

와치 시놉시스도 거의 매일 써서 분량이 꽤 쌓였다. 그릇별 시놉시스와 확장편은 서로 연결된 부분 때문에 서둘러 쓰기도 했다.

7년

세 달 사이에 머리카락이 꽤 길었다. 어깨에 닿을 만큼 기르기는 거의 십 년 만이다. 익숙하지 않고 거추장스럽기도 해서 뒷덜미를 자꾸 쓸어보게 된다.
몸무게는 4킬로 줄고 새치가 또 늘었다. 왼쪽 팔과 오른쪽 다리에 건선이 다시 번졌다. 신체 기능이 전체적으로 계속 떨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심적으로도 힘에 부쳤는가 하면 그렇지 않았다. 이 정도는 적당히 참아 넘길 만큼 덤덤해졌다.

다사다난했던 2020년 끄트머리에 마주한 공백은 작가로서 지나온 시간에 대한 슬럼프였다.
내가 결국은 미워한 스물다섯 이전의 삶이 그토록 바랐던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산 7년보다 나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날것의 모양대로 사는 나보다 주어지는 여러 모양으로 살았던 내가, 종종 숨 막혔던 그 삶이 적어도 방종한 인생보다는 쓸만하지 않았을까.
구제할 길 없이 거꾸러진 자리에서 나는 눈과 귀를 막고 가만히 시간만 흘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