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3

한해살이풀처럼 연명하는 심정으로 맞이한 8주년, 작가로서도 개인적인 삶 속에서도 그 의미가 남다른 2021년의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더 늦기 전에 뭐라도 해야지 싶어진 나는 드로잉북을 꺼내 들었다. 언제나처럼 가만히 자축하고 넘어가자고 일러스트 밑그림을 끄적이다 손을 놓고는 몇 달을 보낸 참이었다.
그리고 아주 단순한 계기로, 작년 추석 때 화르륵 타올랐다가 네가? 라는 자조적 비꼼에 단념하고 말았던 리퀘스트 이벤트를 단행하기로 했다. 언제 또 내켜서 이렇게 판을 벌일지도 알 수 없는 일, 또 성격상 흐름을 타지 못하고 제쳐두면 그대로 몇 년은 묵혀두니 드물게 긍정하는 사이에 밀고 나가자며 재촉한 것이다.

기념 그림의 틀은 숫자 8 모양과 손거울이다. 거울은 전부터 와치의 상징물 가운데 하나로 꼽아 이야기 안에서도 활용한 바 있기 때문에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와치의 복장은 의도하지 않았는데 좀 매니쉬해졌다. 갓끈과 턱시도 조합이 묘하다 할까, 두꺼운 갓끈이 귀엽길래 신나서 그린 것이 뜻밖에 보닛을 연상시킨다.
무영은 특유의 분위기 자체가 중성적인 느낌이다. 그런 인물이라는 요소를 넣은 기억이 없음에도 그려놓고 보면 항상 비슷한 색감이 배어나온다. 얇은 판유리 수십 장을 접합해 만든 단단한 유리창 같은 사람, 그래서 와치의 중심축은 바로 이 사람이구나, 생각하곤 한다.

8주년


〈와치〉 8주년을 기념하며 리퀘스트 받습니다.
9월 20일부터 22일 추석 기간에 그릴 예정이고 기본적으로는 모작의 형태로, 연습 겸해서 가볍게 진행하겠습니다.
신청하실 분은 이미지 파일 한 장, 작품 컷이라면 제목과 캐릭터 이름을 적어주세요. 〈와치〉의  경우 원하시는 장면을 첨부하시면 디지털 작업을 해서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파일은 트위터 @Mhnwn 쪽지나 메일 hbleuw@naver.com 편하신 쪽으로 보내시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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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부고를 받았을 땐 슬픔보다 충격이 훨씬 컸다. 한 음절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고 동시에 믿기지가 않았다.
울음을 터뜨렸다면 그건 위선이었을 테고 울지 않은 것은…

먹빛

올 상반기엔 다양하게 아팠다. 뜻밖에 알러지 반응이 올라온다거나 급체를 한다거나 약한 식중독 증세를 겪기도 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호흡 곤란도 몇 차례 있었다.

심적으로는 마침내 한계인가 싶은 지점에 다다랐는데, 나는 언젠가 그림을 그만두게 된다면 그 이유는 집에서 강제하거나 생활고로 무너지거나 둘 중 하나이리라 생각했었다. 무력하게 바닥을 찍으면서 자포자기, 그런 예상이었다. 하지만 회복되지 않는 체력과 스스로 착취하고 착취당하는 생활은 의외의 표적을 끌어냈다.
난생처음으로 그림 자체가 미워진 것이다. 이제껏 삶을 지탱해온 동력이 사그라드는 듯, 아주 끝장을 내려는 듯이. 냉엄한 현실이 바닥을 치기 전에 형편없는 내 바닥이 드러난 셈이다. 놀랍고, 두렵고 슬펐다. 극단적 충동으로 고생했을 때와 같이 어떤 형태로도 차마 이 마음을 꺼내놓을 수 없었다.

나는 안 되는 사람인 것을 그만 인정하고 전부 접어버리라며 종용하는 목소리, 익숙한 주장은 항상 과거의 실패를 근거로 든다. 부정하고자 할수록 자기 부정의 함정에 빠져 아등바등 맴을 돌게 된다. 등 배가 뒤집힌 벌레처럼.

칠월

이달부터 거의 생존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아침마다 한 시간씩, 시놉시스를 쓰는 날엔 삼십 분씩.
7월 6일, 피검사를 하고 CT와 엑스레이를 찍었다. 검사 결과는 전반적으로 괜찮았고 약을 처방받았다. 빈혈은 역시나, 피를 많이 흘려서 적혈구 크기가 작다고 한다.
7월 7일, 힘없이 가라앉아서 오전 이후로 쉬었다. 밤엔 좀 짜증스러운 문자를 받았다.

병원의 정적인 공기는 내리누르는 느낌으로, 침대 위에 누웠던 그 잠깐 사이에 밀려들던 단절감은 내가 얼마나 유약한 사람인지 돌아보게 했다.

그림자

어둠은 오히려 자연 그대로의 것이고 빛은 새로 태어난 것, 모양 있는 것이다. 그 둥그런 빛 아래라야 비로소 그림자는 진다.
태양을 마주하고 서면 자신의 뒤로 지는 그림자를 이따금 돌아보며 나아갈 뿐이지만, 태양을 등지고 서면 앞을 향해 걸어도 늘 자기 그림자에 매이게 된다.
나의 그림자가 더 검고 더 선명해짐은 나를 비추는 빛이 더 밝고 더 맑아진 까닭이다.

나무

최근 카더가든이란 가수를 알게 되었다. 스쳐 지나듯 본 명동콜링 라이브 영상에 끌렸고, 막 발을 담근 참이라 유명한 곡부터 시작했다. 나무, 꿈을 꿨어요, home sweet home, 파도, 밤새. 드라마 OST인 happy ending은 의외성이 있어서 좋다.
싱어송라이터에, 끄는 듯한 가창 방식이며 무엇보다 독보적인 음색이, 원래도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취향인데 시네마틱하기까지 해서 매료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다.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버렸다. 어깨에 닿을 만치, 그리 긴 길이도 아니었는데 근 십 년 가까이 시원하게 짧은 머리여서 그랬는지 유독 불편했다.

원래도 몸에 뭐가 거치적거리는 걸 싫어하긴 한다. 손목 발목을 조이는 옷이나 딱 맞는 정 사이즈의 옷은 물론이고 스킨로션도 피부 위에 한 겹을 덮는 느낌이라 답답하다. 핸드크림과 립밤은 무겁고 끈적거려서 더 그렇다. 춥고 건조한 겨울이면 손등이나 입술이 거칠거칠 갈라져서 아픈데도 그냥 참고 버팅길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