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03

5th Anniv

『와치』 5주년.
불과 1년 전, 눈을 감고 있는 모습으로 그렸을 때만 해도 연재 재개는 뜬구름처럼 멀었다.
올해 초 『와치 2018』 리마스터 콘티를 그리면서도 그랬다. 그 작업조차 제대로 마칠 수 없으리라 나는 생각했었다.
…이만하면 잘 넘어왔다. 그렇게 말이라도 하고 싶다.

『와치』는 『빚은』과 새 프로젝트를 쓰고 그리는 중에도 불쑥 진행되곤 한다. 특히 「점, 선, 면」이란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위안이 되는 내용이라 오히려 의지하고 있다. 아주 초기 구상 중 하나로 「동고림」과 함께 썼던 편이다.
나는 내심 안도한다.

세번째 그릇인 「서광경」은 여전히 그 자리에 멈추어 있어서, 펜을 들어야 남은 이야기를 들려줄 테지만

자, 제발, 얼마 남지 않았다.

8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 꾸준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 다만 저번 글로부터도 더 아래로 바짝 내려가면서 조각 글조차 적지 않게 되었다.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는 이제 세 번째에 이르러 중후반부에 들어섰다. 총 950페이지를 250페이지로 옮겨 적었고, 통째로 스캔한 페이지는 43개 목록별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이 일주일은 책에 등장하는 인물과 작품 목록에 해당 내용까지를 다시 별개의 파일로 정리하며 보냈다.
7월엔 이 작업과 RECORD 1.3 원고를 병행하다가 8월에는 온전히 책에 집중했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2』, 『쥐 I』, 『쥐 II』를 다시 읽었으며(앞으로 몇 차례는 더 읽어야 할 터다.) 『META MAUS』를 집어 들었다. 『그레이스』는 절반을 읽었다. 이다음은 긴 호흡으로 『토지』에 매달릴 터다.

다음 주에는 첫 시놉시스를 위해 펜을 든다. 모든 정황이 마치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달려간다.
 

저변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한동안 자기 자신을 향한 미움이 마음을 휘젓는 양을 가만히 보았다.
이 시기는 불안정하다.

떠나온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돌아선 사람들을 기억한다.
항상 이렇게 사람을 버렸다. 그래, 잃었다기보다 버렸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여러 달 부모님의 연락에 대답하지 않았다. 가족의 경조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어쩌다 마주쳐도 금세 자리를 피했다.
저쪽에서 던지는 모든 시도에 딱딱한 껍질을 뒤집어쓰고 깨트리는 방식으로 상처를 입힌다.
이토록 냉정하고 잔인한 성정은 바뀌지 않았다.

과연 인간의 악의와 선의의 뿌리는 같은가, 다른가. 멍하니 그런 잡념에 빠진다.
시간의 제약 속에서 사람은 주관적, 관습적, 집단적 기준에 따라 선과 악을 판단하고
선의에서 비롯한 선행, 악의에서 비롯한 악행을(선의와 악의는 교차해도 결국 동일하게) 나눈다. 그러나 원인과 결과를 한데 압축할 수 있다면, 인생의 시작과 끝을 멀리서 관전할 수 있다면…
혹은
타인의 삶을 따라 발굴한 명제가 보편적일 수 있다면
어떤 비극들은 종종 확실한 선의의 명령에서 출발한다.

오랜만에 그 꿈을 꾸었다.
항상 달아나다 깨는 꿈, 무서운 얼굴을 마주하고 마는 꿈.
무의식의 저변에서 나는 마침내 용서를 꾸며댔다.
 

대본, 콘티

RECORD 1.2와 1.3이 유독 그림 콘티 단계에 애를 먹인다.

작년에 작업해 둔 분량과 새로운 내용을 취합,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흐름이 제한된 느낌을 받는 것, 창작 세계관으로 대사의 공백이 유독 많은 것이 아마 주된 원인이다.

와치와 빚은은 그야말로 전혀 다르다. 작품 색도 색이거니와, 와치의 인물이며 이야기가 독단적으로 제 갈길 갔던 걸 생각하면…
빚은의 경우 작자의 끈질긴 사고를 요구한다.

그런 차이 때문인지 재미있게도 와치를 연재한 경험은 빚은에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한다.
더구나 기본기의 부재는 늘 나를 원점으로 돌려 놓는다.
 

생강

말린 생강을 계피와 함께 푹 우려낸 뒤 꿀이나 설탕을 타 마신다. 은은한 단맛을 위해 대추나 배를 넣기도 하지만, 나는 보통 깔끔한 맛을 선호한다.

어릴 적부터 꾸준히 좋아하는 먹거리로
진저에일에 진저본 생강젤리, 장어와 함께 먹는 채 썬 생강과 초밥에 곁들이는 생강절임까지 가리지 않는다.
슈렉에 등장하는 진저맨 쿠키에도 관심있다. 맛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