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

이야기의 첫 번째 장인 RECORD 1 에서 나는, 독자들 스스로 마치 어슨의 세계에 방문한 이방인처럼 느끼게 하고 싶었다. 어슨의 사람들에게 당연하기만 한 생활 양식이 생소하길, 그들이 쓰는 단어와 대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길 바랐다.
간결하게는, 어슨 내에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들은 오랜 시간 공존해 왔고, 서로의 삶과 언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 나름으로 만들어낸 세계일 경우 독자가 알기 쉽도록 시작 단계에서 간단한 세계관을 푸는 것이 불문율임에도 그저 내 의도대로 밀고 나갔었다.
돌아오는 반응은 뭐라는지 모르겠다, 내용을 알 수 없다, 3회분 만에 흥미를 잃었다 등으로, 지난 7월 중순 즈음 지원한 웹툰 플랫폼에서 원고를 반려하며 꼽은 이유 역시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워서였다. 짧은 번아웃과 후유증이 남았다.

결국, 프롤로그 격인 RECORD 0 의 시놉시스를 적었다. 나중으로 빼 두었던 과거의 한 부분을 끌어 옴으로써,
숲속 크래들에 첫발을 디딘 당시의 래쉬가 작은 의미의 이방인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 역시 자신의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변주된 대안이긴 하다.

RECORD 1.1~1.4 는 닫아 두었으며, 수정 작업 후 0화 다음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한 칸

와치를 그릴 때 필요했던 건 방 한 칸이 전부였다. 나는 그때 그 좁고 네모난 방에서 겹세계를 보았던 것 같다.

지금은 어딘가로 사라지고만 싶다. 시선의 높이가 흙과 가까운 곳, 혹은 거닐기 좋은 수목원 한구석에 살고 싶다.

빚진

나는 여전히 와치를 읽어준 분들에게 빚진 채로, 마음속 자책과 죄의식을 떨쳐낼 수 없다.

새 이야기를 그려야만 한다. 분명하게는 전보다 좀 더 많이 읽힐만한 이야기를 그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 와치를 기다리는 독자에게 좋은 이야기이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다. 한 화 마감하고 공개할 때마다 심장이 요동친다. 이 3회분만에 나는 절실하게도 어디론가 단절된 곳으로 떠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