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미

지난 몇 주가 올해의 최장 슬럼프 기간이었다. 이젤에 늘어놓은 원고는 꼴 보기 싫었고 펜도 잡고 싶지 않았다. 왜 이러고 사는지, 실패 이상의 결과가 있긴 할는지.

내장을 꺼내어 샅샅이 훑고 싶었다. 어긋난 뼈를 쳐서 붙이고 싶었다.
병에건 돈에건 무릎 꿇려서 그 집으로 돌아가게 될까, 숨통이 막혀서는 잘못된 길로 향했었다 고백하게 될까.

내 그림에 갖는 확신은 언제나 얕고 약해서 걸핏하면 부서지고 흩어진다. 의구심은 발목에 걸린 느슨한 올가미다. 무난하게 넘기는 듯싶다가도 사소한 챔질 한 번에 끌려 올라간다.

방치

4월에 들어서고부터, 그러니까 정식 연재 논의를 스톱한 후로 새 회차 업데이트 공지 외엔 아무런 글도 쓰지 않았다. 써놓고 올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글쓰기 자체를 멈추었었다. 4월 한 달은 쓸 수 없어서 작업에만 매달렸고 5월 중순에는 후기를 시간순으로 나열은 했는데 감정이 과하게 느껴져서 방치했다.
술렁였던 마음을 글로 털어내지 못한 탓에 출력창이 막힌 듯 다른 일상글이 비집고 나올 틈이 없었다. 그림과 엮인 말들은 늘 씹고 씹어 삼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슬픔

어제는 슬퍼서 울었다.
울다 울다가 잠들었다. 깨어나서는 또 울었다.

저녁이 되어 원고 앞에 앉았다.
선을 긋는데 문득 눈물이 나서 가만가만 위를 올려다보았다.

“슬퍼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永遠히 슬플 것이오.”
슬픔은 영원히 계속된다….

삶의 본질이 슬픔에 있어서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었을까.

마감

대본을 교정하고 원고를 편집하던 바로 어제, 다시금 고비가 찾아왔다. 이렇게 짧은 기간만에 다시 시작된 경우는 처음이고 나는 아주 비관적인 생각이 들었다.

1월 중반부터 2월까지

1월 중반, 처음 겪는 징후로 컨디션이 저조한 가운데 18일부터 29일까지 출혈이 10일 남짓 지속됐고, 기간 역시 전에 없이 길었던 탓인지 후유증도 심했다. 두통과 메스꺼움으로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었고, 한 달 동안 집 밖에 나가지 못했다. 심장이 빠르게 뛰면서 통증이 간헐적으로 느껴졌고, 어느 밤엔 자다가 놀라서 깼다.

공백기가 길어지자 마음이 쫓겼다. 31일부터 2월 2일까지 짧게라도 누워서 책을 읽거나 엎드려서 시놉시스를 썼다. 3일, 2주 넘게 중단했던 원고를 잡았다가 3시간 만에 포기하고 이후 8일까지 얌전히 지냈다. 13일에 다시 선작업을 했다가 14일을 무력하게 보냈고, 15일에 밑색을 발랐다가 16일에 겨우 책만 두 시간 읽었다. 17일부터 19일까지 두세 시간씩 작업했다. 20일부터 23일까지 손을 놓았다. 24, 25 양일간은 다시 독서와 시놉시스, 26일부터 바로 어제인 29일까지 평균 다섯시간씩 채색을 했다.

이 모든 말들이 참 지겹고도 구태의연하다.

그럼에도 이번 고비는 확실한 인식을 남겼다. 저쪽 집에서 나가기로 한 시점부터 작은 작업방이 주어진 지금까지 최소 세 번, 문자 그대로 솜이 나를 건졌다. 내 몸이 과연 버텨낼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 두려웠던 날들조차, 적어도 생활이 비참하지 않았던 건 모두 솜 덕분이었다.
앞으로는 솜을 위해 그리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나와 나의 바람보다 솜을 우선하면서, 그렇게 그림을 그리고 싶다.

책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초조한 마음>을 읽었다. 시놉시스는 동고림 확장편인 「진홍과 주명」을 썼다.

Re:

다시, 시작이다. 어쩐지 그런 기분이 든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아니 실제로는 모니터 앞에 앉았지만­― 지난 시나리오를 읽은 뒤 포스타입의 각 페이지에 올렸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혼자만의 다짐이자 간절한 바람인 글들. 언젠가, 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