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 이야기

1. 새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사태로 홍보의 중요성을 알아가는 중이기도 했고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SNS로 보기 편한 방식의, 내용은 좀 무거워도 형식과 작화가 가벼운 작품을 계획했습니다.

18년 3월에 준비하기 시작해서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들었어요. 책 읽고 정리하는 데만 거의 6개월이 걸렸습니다. 3회분 시놉시스를 쓰면서는 처음으로 자신의 과거를 기록으로써 들여다보았고 거기서 한발 물러나 삶을 복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프로젝트’ 성으로 진행한 새 작품이 제가 계획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다음에야, 이 이야기가 왜 나에게 왔는지 앞으로 어떤 준비를 거쳐야 할지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2. 와치 연재가 중단된 다음 해에 저는 세 가지 이야기를 구상했는데, 그 첫 번째 이야기가 역사 미스터리였습니다. 역사 기반이라 시놉시스를 쓰던 도중 준비 기간이 부족해 미뤄 두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수국으로, 20화 단편에 회별 시놉시스까지 전부 끝내고 1화 원고를 그려 공개했습니다. 서른다섯 즈음, 말하자면 연주의 나이 즈음, 제가 그 이야기를 감당할 만큼 성숙할 때 이어 그리려고 해요.

세 번째 이야기는 EARTHEN; 빚은이고 제 안에서는 와치와 짝을 이루는 작품이에요. 가능하면 와치를 연재하면서 함께 그리고 싶기 때문에 작업 시간 배분을 고민 중입니다.

3. ‘내가 이야기를 짠다’기보다 ‘이야기가 나를 찾아온다’고 믿기 때문에 이 이야기들을 만난 이상 그려내야 할 의무와 책임을 느낍니다. 순서와 때를 기다릴 뿐이죠.

4. 와치 2018을 작업하면서는 따로 연재처를 찾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냉소적인 감정이 남아있어요. 뭣 같은 성격이라 내키는 대로 해보려고요.

이런저런 이야기

1. 집을 나온 지도 벌써 1년입니다. 이달 초에 이사했어요. 솜이 작은 방을 제 작업실로 주어서 분수에 넘치는 환경에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2. 2월 4일이 생일이었습니다. 그간 레진코믹스 데뷔일이었던 9월 3일에 기념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부러 날을 맞춰 와치 2018 이토. 손 편을 4일 날 공개했습니다.

3. 최근 들어서야 다양한 웹툰 작품을 읽을 수 있게 됐습니다. 출판 도서에 익숙하다 보니 웹툰에 적응하기까지 오래 걸렸어요.
그리고 이렇게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 틈에서 과연 내가 만화를 그려도 되나 싶은, 별수 없는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4. 무려 15년이나 아득바득 깨물어 먹었던 얼음을 최근에 겨우 끊었습니다. 오랫동안 얼음이 맛있어서 먹었고 지금도 맛있지만, 더는 안 되는 시기가 왔어요. 대신 물을 끊임없이 마시는 중입니다.

공백

해가 바뀔 때면 의식처럼 썼던 마무리 혹은 여는 글을 이번에는 쓰지 못했다. 품은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기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 무거운 추처럼 가라앉은 생각, 1년 가까이 불쑥 올라와 나를 사로잡곤 했던 그 충동.

1월의 어느 밤, 솜 쪽으로 몸을 틀어 옆으로 누운 나는, 작년 1월에 강하게 나를 사로잡았던 자살 충동을 고백했다. 그 이후로 종종 그런 충동을 느꼈었노라고, 죽고 싶지 않은 본능과 죽기를 종용하는 충동이 속에서 부딪힌다고. 원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닌데 불안해서 심장이 떨린다고,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할까 싶다고.
오늘에야 이 경험을 적는 이유는 병원에 다니진 않았으나 이 질척하고 암울한 것이 겨우 소강된 덕이다.

네 마음에 맺힌 게 뭐든 아무것도 아니란 말, 부모의 본심을 알면 다 풀어진단 메시지엔 분노로 맞받아치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당신의 그런 말들에 나는 생에 처음으로 몸을 던져 죽고 싶었다든가 그렇게 지난 1년을 시달렸다든가 하는 속마음을 끝내 뱉어낼 수는 없었다.
유년에서 성년에 이르기까지, 무의식에서였든 아니었든 당신이 나에게 심어둔 촘촘한 죄의식은 여전히 나를 옭아매고 있다.

8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 꾸준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 다만 저번 글로부터도 더 아래로 바짝 내려가면서 조각 글조차 적지 않게 되었다.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는 이제 세 번째에 이르러 중후반부에 들어섰다. 총 950페이지를 250페이지로 옮겨 적었고, 통째로 스캔한 페이지는 43개 목록별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이 일주일은 책에 등장하는 인물과 작품 목록에 해당 내용까지를 다시 별개의 파일로 정리하며 보냈다.
7월엔 이 작업과 RECORD 1.3 원고를 병행하다가 8월에는 온전히 책에 집중했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2』, 『쥐 I』, 『쥐 II』를 다시 읽었으며(앞으로 몇 차례는 더 읽어야 할 터다.) 『META MAUS』를 집어 들었다. 『그레이스』는 절반을 읽었다. 이다음은 긴 호흡으로 『토지』에 매달릴 터다.

다음 주에는 첫 시놉시스를 위해 펜을 든다. 모든 정황이 마치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달려간다.
 

저변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한동안 자기 자신을 향한 미움이 마음을 휘젓는 양을 가만히 보았다.
이 시기는 불안정하다.

떠나온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돌아선 사람들을 기억한다.
항상 이렇게 사람을 버렸다. 그래, 잃었다기보다 버렸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여러 달 부모님의 연락에 대답하지 않았다. 가족의 경조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어쩌다 마주쳐도 금세 자리를 피했다.
저쪽에서 던지는 모든 시도에 딱딱한 껍질을 뒤집어쓰고 깨트리는 방식으로 상처를 입힌다.
이토록 냉정하고 잔인한 성정은 바뀌지 않았다.

과연 인간의 악의와 선의의 뿌리는 같은가, 다른가. 멍하니 그런 잡념에 빠진다.
시간의 제약 속에서 사람은 주관적, 관습적, 집단적 기준에 따라 선과 악을 판단하고
선의에서 비롯한 선행, 악의에서 비롯한 악행을(선의와 악의는 교차해도 결국 동일하게) 나눈다. 그러나 원인과 결과를 한데 압축할 수 있다면, 인생의 시작과 끝을 멀리서 관전할 수 있다면…
혹은
타인의 삶을 따라 발굴한 명제가 보편적일 수 있다면
어떤 비극들은 종종 확실한 선의의 명령에서 출발한다.

오랜만에 그 꿈을 꾸었다.
항상 달아나다 깨는 꿈, 무서운 얼굴을 마주하고 마는 꿈.
무의식의 저변에서 나는 마침내 용서를 꾸며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