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 꾸준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 다만 저번 글로부터도 더 아래로 바짝 내려가면서 조각 글조차 적지 않게 되었다.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는 이제 세 번째에 이르러 중후반부에 들어섰다. 총 950페이지를 250페이지로 옮겨 적었고, 통째로 스캔한 페이지는 43개 목록별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이 일주일은 책에 등장하는 인물과 작품 목록에 해당 내용까지를 다시 별개의 파일로 정리하며 보냈다.
7월엔 이 작업과 RECORD 1.3 원고를 병행하다가 8월에는 온전히 책에 집중했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2』, 『쥐 I』, 『쥐 II』를 다시 읽었으며(앞으로 몇 차례는 더 읽어야 할 터다.) 『META MAUS』를 집어 들었다. 『그레이스』는 절반을 읽었다. 이다음은 긴 호흡으로 『토지』에 매달릴 터다.

다음 주에는 첫 시놉시스를 위해 펜을 든다. 모든 정황이 마치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달려간다.
 

저변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한동안 자기 자신을 향한 미움이 마음을 휘젓는 양을 가만히 보았다.
이 시기는 불안정하다.

떠나온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돌아선 사람들을 기억한다.
항상 이렇게 사람을 버렸다. 그래, 잃었다기보다 버렸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여러 달 부모님의 연락에 대답하지 않았다. 가족의 경조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어쩌다 마주쳐도 금세 자리를 피했다.
저쪽에서 던지는 모든 시도에 딱딱한 껍질을 뒤집어쓰고 깨트리는 방식으로 상처를 입힌다.
이토록 냉정하고 잔인한 성정은 바뀌지 않았다.

과연 인간의 악의와 선의의 뿌리는 같은가, 다른가. 멍하니 그런 잡념에 빠진다.
시간의 제약 속에서 사람은 주관적, 관습적, 집단적 기준에 따라 선과 악을 판단하고
선의에서 비롯한 선행, 악의에서 비롯한 악행을(선의와 악의는 교차해도 결국 동일하게) 나눈다. 그러나 원인과 결과를 한데 압축할 수 있다면, 인생의 시작과 끝을 멀리서 관전할 수 있다면…
혹은
타인의 삶을 따라 발굴한 명제가 보편적일 수 있다면
어떤 비극들은 종종 확실한 선의의 명령에서 출발한다.

오랜만에 그 꿈을 꾸었다.
항상 달아나다 깨는 꿈, 무서운 얼굴을 마주하고 마는 꿈.
무의식의 저변에서 나는 마침내 용서를 꾸며댔다.
 

생강

말린 생강을 계피와 함께 푹 우려낸 뒤 꿀이나 설탕을 타 마신다. 은은한 단맛을 위해 대추나 배를 넣기도 하지만, 나는 보통 깔끔한 맛을 선호한다.

어릴 적부터 꾸준히 좋아하는 먹거리로
진저에일에 진저본 생강젤리, 장어와 함께 먹는 채 썬 생강과 초밥에 곁들이는 생강절임까지 가리지 않는다.
슈렉에 등장하는 진저맨 쿠키에도 관심있다. 맛있을 것 같다.
 

복구

thit. 무사히 복구했습니다.
워드프레스 업데이트 과정에서 충돌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짧은 시행착오를 거쳐 정상적으로 돌아왔습니다.

hnit. 이 홈페이지는 솜이 대학생 때 웹디자인 과제로 만들었고 와치를 그리면서 개인 공간이 필요했던 제가 물려받았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대부분의 경우 저 혼자 복구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죠. 항상 옆에 붙어서 어떻게 하는지 봅니다만 기본 지식의 부재로, 단순한 html 소스 수정과 관리 정도가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tong. 컨택트폼을 다시 설치하면서, 새로 설정할 수 있게 된 알림 메시지 몇 가지를 적어 보았습니다. 소소한 문장이고 혼자 소소하게 즐거워했어요.
 

오류

홈페이지에 수정해야 할 오류가 있어서 당분간 불안정하겠습니다.
큰 이상은 없지만, FEED란 젯펙이 삭제돼 연락 폼이 사라졌어요. 개인 메일을 적어둘까 하다가 평소 피드백의 빈도를 봐서 공지만 올립니다.

다음 주말 즈음, 동생 솜이 여유로운 날 복구 예정입니다.
 

곡선

어느 순간부터 7월과 8월은 1년 중 가장 아래로 굽어지는 달로 자리 잡았다. 평소 잘 켜지 않는 폰을 의식적으로 방치하는 달이기도 하고 외부의 기척에 줄곧 흠칫하는 달이기도 하다.

작업 진행과는 별개로 압박감이 지속되고 빈번히 대답을 피하게 된다. 첫 출가 역시 이맘때였다.
 

후원

이 화두를 어떤 식으로 꺼내야 할지 몰라 몇 주간 말을 골랐다.

포스타입 페이지를 통해 첫 후원을 받았을 때, 기쁨이나 감상보다 먼저 반응한 감각은 심장 떨리는 죄책감이었다.
나는, 상대방의 호의에 사실 익숙하지 않다. 그림과 관련해서는 특히나 더 그렇다. 가족이란 좁은 울타리 안에 갇힌 삶 전반에 걸쳐, ‘그림 그리는 나’는 항상 질타와 정죄 아래 묶인 무쓸모한 존재였다.

그래서 후원 페이지를 개설해 놓고도, 막상 후원을 받고 보니 스스로 사기꾼이 된 듯한 심정에 휩싸인 것이다. 포스타입에 올려놓은 작품의 분량이 후원받을 만한 적정선에 미치지 못한다는 느낌도 한몫했다.
결국은, 독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기꺼이 후원하는지를 의아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최근 받은 한 통의 메일이 나를 일깨웠다.

덧붙여 금액에 대해 따로 상한선이나 하한선을 제시하지 않았던 이유는, ‘후원’의 취지에 충실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생각하는 후원이란, 투자에 가깝다. 그것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작품을 미리 고대하며, 작가의 손에 펜과 종이를 쥐여주는 행위다. 나는 그들의 후원에 작품으로 보답할 의무를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