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37

가난한 자들에게는 인생은 늘 준열하였다. 가진 자에게는 인생은 유희였었다. 찰나주의, 향락주의…… 행복을 희구하는 소박한 마음은 재물로 하여, 권위와 힘에 의하여 썩는다. 그것은 생성하여 노화하고 죽음에 이르는 이치 때문일까.
(…)
소망은 먼 곳에 있고 탐욕은 가까운 곳에 있다. 탐욕은 손에 넣기 쉬워도 진실은 잡기 어렵다. 해서 사람들은 진실을 외면하고 맑은 물줄기에서 탈락한다. 숫자만 기억하고 숫자만 믿으려 한다. 숫자는 질이 아니다. 양이다.
/ 토지 4부 2권 337p

200

천지 만물이 시작과 끝이 있음으로 하여 생명이 존재한다고들 하고 탄생은 무덤에 박히는 새로운 팻말의 하나라고들 하고 죽음에 이르는 삶의 과정에서 집념은 율동이며 전개이며 결실이라고들 하고, 초목과 금수와 충류에 이르기까지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고들 한다.

이 갖가지 죽음의 처리를 앞두면서, 헛된 탄생에 삶을 잇는 그동안을 집념의 조화는 참으로 위대하여 옷을 걸치고 언어를 사용하고 기기묘묘한 연극으로써 문화와 문명을 이룩하였다고 하는데 그것은 비극과 희극이 등을 댄 양면 모습이며 무덤의 팻말을 향해 앞뒤걸음을 하는 눈물 감춘 희극배우, 웃음 참는 비극배우의 일상이 아닌지 모르겠다.
/ 토지 1부 2권, 박경리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저명한 오스트리아 수필가이자 소설가인 슈테판 츠바이크의 뛰어나고 주요한 작품에서 영화의 영감을 떠올린 앤더슨은 배경과 액자식 스토리 전달 방식만 이용한 것이 아니라 세계의 상실도 물려받았다.
문명의 파괴, 한 시대의 종말, 우리 삶이 우리가 속한 더 큰 역사에 의해 변형되는 끔찍한 방식들…
– 앤 워시번

많은 웨스 앤더슨 영화들처럼 이 영화는 상실을, 우리가 상실에 어떻게 적응하는가를, 혹은 어떻게 절대로 적응 못하는가를 다룬다.
– 매트 졸러 세이츠

종종 이 세계가 물리적 폭력에 의해, 아주 단순한 방식과 저열한 논리를 무기 삼아 돌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재독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를 다시 읽고 있다. 처음 읽을 때는 핀센트의 편집증이 환기하는 개인적인 가정사에 괴로웠다면, 이번에는 타인을 대하는 그의 방식에 속수무책 공격당하는 듯했다.

일독

화가 반 고흐의 일대기를 날 선 필치로 해부한 평전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는 실로 문제작이 맞았다. “미치광이 천재 화가의 예술적 신화와 비극적 자살”이라는, 몇 세대에 걸쳐 관객의 판타지를 충족시켜 온 매혹적 이야기가 치밀한 두 작가의 손에 걷히며, 인간 핀센트 판 호흐를 정직하게 드러낸다.

개인적으로 이렇게까지 정신을 혹사하는 책은 처음이었다. 핀센트의 끈질긴 편집증이 해묵은 고통을 환기해댔기 때문에, 몇 번이나 읽기를 그만두고 싶었다.
사람의 내면을 고작 한 꺼풀 벗겨내는 것만으로, 막연한 끌림이 대번에 사그라듦을 재차 확인하기도 했다. 인간애에의 회의감은 건재했다.

천 페이지에 달하는 한 달여의 책 여행이었다. 빈 캔버스가 마련됐다.

목록

나의 본바탕을 형성한 어린왕자,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비밀의 화원, 빨간 머리 앤, 모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강렬한 감각적 심상을 남긴 소나기와 동백꽃.
셜록홈즈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역사소설과 마지막 황태자, 안네의 일기, 향수, 눈먼 자들의 도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 상상력 사전.
연금술사와 해리 포터 시리즈와 고전 전집, 자연과학 만화.
지훈육필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박경리 작가님의 토지,
아트 슈피겔만의 쥐.

프롤로그, 광적인 마음

누구라도 핀센트를 ‘내면으로부터’ 알아야만 핀센트처럼 그의 미술을 보고 느낄 수 있다.
19세기 후반 미술계는 미술에 있어서 전기의 역할에 몰두했다. 그 문을 열어젖힌 에밀 졸라는 그림과 화가가 녹아든 “살과 피의 미술”을 요구했다.
누구보다 열렬히 전기의 중요성을 믿었던 핀센트 판 호흐는 1885년에 적었다. “졸라는 미술에 대해 아름다운 뭔가를 말하고 있다. 예술 작품에서 나는 그 사람, 즉 그것을 그린 미술가를 찾고 사랑한다.” 
/ 〈Van Gogh: THE LIFE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 스티븐 네이페 ·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