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독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를 다시 읽고 있다.
처음 읽을 때는 핀센트의 편집증이 환기하는 개인적인 가정사에 괴로웠다면,
이번에는 타인을 대하는 핀센트의 방식에 속수무책 공격당하는 듯했다.

핀센트의 그림에 있어 가장 방해되는 존재는 핀센트 본인이 아니었을까.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

화가 반 고흐의 일대기를 날 선 필치로 해부한 평전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는 실로 문제작이 맞았다. “미치광이 천재 화가의 예술적 신화와 비극적 자살”이라는, 몇 세대에 걸쳐 관객의 판타지를 충족시켜 온 매혹적 이야기가 치밀한 두 작가의 손에 걷히며, 인간 핀센트 판 호흐를 정직하게 드러낸다.

개인적으로 이렇게까지 정신을 혹사하는 책은 처음이었다. 핀센트의 끈질긴 편집증이 해묵은 고통을 환기해댔기 때문에, 몇 번이나 읽기를 그만두고 싶었다.
사람의 내면을 고작 한 꺼풀 벗겨내는 것만으로, 막연한 끌림이 대번에 사그라듦을 재차 확인하기도 했다. 인간애에의 회의감은 건재했다.

천 페이지에 달하는 한 달여의 책 여행이었다. 빈 캔버스가 마련됐다.
 

별까지 걸어간다

인내의 범주에 가장 인접한 욕구는 책 구매욕이다.
책은 그림과 함께 나를 채우는 양식 중 하나이며, 거추장스러운 육체에서 벗어나 어린 왕자의 별까지, 그리고 고흐의 밤하늘의 별까지도 걸어가게 한다.
 

197, 880725

화가가 자기 그림에 너무 몰두해서 감정적으로 점점 피폐해지고 가정생활이나 다른 일에는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간다고 할 때, 그래서 그가 단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자기 희생과 자기 부정, 그리고 상처받은 영혼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면,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일 역시 그만큼 힘든 일이다.

<동주>

지난 19일 이후 내 머릿속을 부단히도 어지럽히는 <동주>
한번 더 보고 나면, 저 시 속의 거울과 외딴 우물에 어른거리는 것의 형상을 붙잡아낼 수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