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 [조각판]

작업기: 조각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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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 카테고리에 정문. 표상 1-11, 12-22 작업기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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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콘티

RECORD 1.2와 1.3이 유독 그림 콘티 단계에 애를 먹인다.

작년에 작업해 둔 분량과 새로운 내용을 취합,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흐름이 제한된 느낌을 받는 것, 창작 세계관으로 대사의 공백이 유독 많은 것이 아마 주된 원인이다.

와치와 빚은은 그야말로 전혀 다르다. 작품 색도 색이거니와, 와치의 인물이며 이야기가 독단적으로 제 갈길 갔던 걸 생각하면…
빚은의 경우 작자의 끈질긴 사고를 요구한다.

그런 차이 때문인지 재미있게도 와치를 연재한 경험은 빚은에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한다.
더구나 기본기의 부재는 늘 나를 원점으로 돌려 놓는다.
 

RECORD 1.2

『EARTHEN ;빚은』 RECORD 1.2


1.2화는 기존 연재분에 새로운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RECORD 0화로 기본적인 세계관은 풀어낸 터라, 특히 마을 어슨에 대해 한층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래쉬가 숲을 통과하는 부분은 초반의 회별 시놉시스 단계부터 적었다가 분량 문제로 삭제했던 그림입니다. 이번에 그릴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 짧은 의식이 가진 의미가 중요한 만큼 신경 쓰인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 외에 선을 좀 더 자유롭게 쓴 부분은 선으로 면을 나눈다는 느낌을 의식적으로 유지하면서 그렸습니다. 즐거웠어요.
원고는 보통 흐름을 타면 작업 시간도 길어지고 손목도 아파집니다…

*위의 1.2를 누르면 포스타입 연재 페이지로 넘어갑니다.
 

거리

빚은을 작업하며 와치 때와는 달라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점은 작품과의 거리감이었다.

와치는 적극적으로 날 이야기 속에 끌어들였고, 나는 부분적으로 그들의 삶을 공유하며 때로는 그들의 자취를 쫓아 걸었다. 이제 돌이켜보면, 나의 위치는 그들의 겹세계에 해당하는 지점이었다.

빚은은 달랐다. 그들은 온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내게 관여하지 않고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하지도 않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덩그러니 이야기와 동떨어진 감각이 낯설었고,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기도 했다.
그렇게 작업을 이어나가는 사이, 어떤 동질감이 나의 위치를 자각하게 했다. 바로 래쉬가 느끼는 외지인의 거리였다.

빚은에서 래쉬는 관찰자 및 기록자로서의 시선을 담당한다. 그가 작품과 연결되는 단 하나의 통로란 뜻이다.
나는 독자들이 그를 통해 어슨을 들여다보며 어떤 이방인의 느낌을 받길 바랐는데, 알고 보니 이야기를 그리는 나 역시도 래쉬를 통해 저 세계를 그려내는 이방인의 위치에 있었던 거다.

이로써 그간 안달해 온 거리감에 대한 고민이 한순간에 불식되었다.

대안

이야기의 첫 번째 장인 RECORD 1 에서 나는, 독자들 스스로 마치 어슨의 세계에 방문한 이방인처럼 느끼게 하고 싶었다. 어슨의 사람들에게 당연하기만 한 생활 양식이 생소하길, 그들이 쓰는 단어와 대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길 바랐다.
간결하게는, 어슨 내에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들은 오랜 시간 공존해 왔고, 서로의 삶과 언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 나름으로 만들어낸 세계일 경우 독자가 알기 쉽도록 시작 단계에서 간단한 세계관을 푸는 것이 불문율임에도 그저 내 의도대로 밀고 나갔었다.
돌아오는 반응은 뭐라는지 모르겠다, 내용을 알 수 없다, 3회분 만에 흥미를 잃었다 등으로, 지난 7월 중순 즈음 지원한 웹툰 플랫폼에서 원고를 반려하며 꼽은 이유 역시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워서였다. 짧은 번아웃과 후유증이 남았다.

결국, 프롤로그 격인 RECORD 0 의 시놉시스를 적었다. 나중으로 빼 두었던 과거의 한 부분을 끌어 옴으로써,
숲속 크래들에 첫발을 디딘 당시의 래쉬가 작은 의미의 이방인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 역시 자신의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변주된 대안이긴 하다.

RECORD 1.1~1.4 는 닫아 두었으며, 수정 작업 후 0화 다음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빚진

나는 여전히 와치를 읽어준 분들에게 빚진 채로, 마음속 자책과 죄의식을 떨쳐낼 수 없다.

새 이야기를 그려야만 한다. 분명하게는 전보다 좀 더 많이 읽힐만한 이야기를 그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 와치를 기다리는 독자에게 좋은 이야기이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다. 한 화 마감하고 공개할 때마다 심장이 요동친다. 이 3회분만에 나는 절실하게도 어디론가 단절된 곳으로 떠나고 싶어졌다.

1.3 작업과정

RECORD 1.3 3-6

작업 난관은 보존의 법칙이라도 있는지, 고난과 역경이 회마다 새롭다.
1.3화의 고비는 원통형 내부구조였다. 맹세건대 나는 원통형의 건물을 그려본 적이 없었다. 나선형 계단도 어려울 판에 집 전체가 둥근 형태라니. 콘티 단계의 저 성의없는 배경은 글로 써놓은 구도를 그림으로 표현할 재간이 없었던 터다.
결국 크래들 내부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채우지 못하다가, 자료 수집 중 시의적절하게도 영국 버밍엄의 도서관을 발견했다. 내부의 공간감과 구조가 적당했다. 우선은 사진을 따라 그리며 감각을 익힌 뒤 겨우 셀들이 발붙일 만한 층을 그려 넣었다.

콘티▽21  밑그림,선▽178  수정▽10  색▽45.5  편집▽8
계▲262.5시간

1.2 작업과정

RECORD 1.2 2-8

1.2화의 모든 숲 칸은 밑그림 없이 바로 선을 그었다. 식물을 그리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된다. 인물 작화로 받는 압박감이 꽃과 나무를 그리면서 풀리기 때문에, 밑그림을 생략하고 식물이 저마다 얼기설기 자라는 풍경을 떠올리며 칸을 채워나갔다.
그러다보니 머릿속에 먼저 전체 풍경을 구상한 후 부분 부분을 충분히 구체화시키며 펜을 움직여야하고, 거기에 드는 시간은 상상 이상이다.

콘티▽10 밑그림,선▽239.5 수정▽7.5 색▽98.5 편집▽14
계▲369.5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