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기. 종이꽃 1-10

작업기를 적는 이유는 각 화에 담긴 개인적인 감상을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해서다. 어떤 장면이 특히 어려웠는지, 반성할 것은 무엇인지,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고민에 빠졌었는지, 평소와는 다른 경험을 했는지 등등.
글을 오픈된 페이지에 올리는 건 한 화를 만드는 과정을 독자들께 공유하려는 목적이다.

첫째 그릇. 종이 위에 피는 꽃 편은 2013년의 구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명확한 한계선이 있었다.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편이라 어설프고 걸리는 부분까지도 최대한 수정하지 않는 쪽으로 작업했다.

* 숫자는 몇 쪽-몇째 칸을 가리킨다. 예) 2-5는 2쪽의 다섯째 칸.
1-1. 첫 장을 가장 나중에 완성했다. 작화를 정돈하면서도 느낌을 살려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구도를 여러 차례 수정해야 했다.
6-4. 검은꽃이 핀 계곡의 절벽을 무슨 색으로 칠할지 또 광택은 어떻게 표현할지 막막했다. 상상했던 톤과는 달랐지만, 청색이 잘 어울려서 다행이었다.
9-3. 두 사람의 대화는 구어체로 썼다. 이 장면 외에는 거의 문어체에 가까운데 유독 이들 장면만 예외적으로 구어체다. 사투리가 섞인 느낌이면서 거기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첫 콘티를 짤 때부터 이야기의 물꼬를 트는 둘의 대화는 구어체였고 전체 수정을 거치면서도 크게 바꾸지 않았다.
10-3. 마을 길은 때로 별 고민 없이 슥슥 그린다. 펜선 과정에서도 긴장을 훨씬 덜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연스러운 선이 나온다.

작업기. 표상 34-44

무영이 달사의 손에서 그림을 빼내어 드는 장면의 칸을 더 크게 배치하고 팔과 종이를 흔들리는 선으로 그려야 했던 것 같다. 시놉시스의 지문에는 약간 비장한 감이 있는데 그림으로 옮기면서 동감이 사라지고 감정선도 멀어졌다.

같은 맥락에서 그림콘티보다 글콘티를 먼저 짜면서 뒤바뀐 작업 순서가 지나고 보니 의도치 않은 함정이었다고 할까, 글콘티의 한 문장을 그림콘티의 한 칸으로 배정한 장면들은 글만큼의 전달력이 없거나 굳이 필요하지 않은 군더더기 칸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 그림콘티를 짤 때는 내가 평소처럼 영상을 그림으로 옮기는 게 아니라 지문을 그림으로 옮기고 있다는 자각조차 없었다.
(이 몇몇 칸들이 계속 거슬렸던 이유를 얼마 전 재편집 하다가 깨달았다.)

정문. 표상 편은 기본적인 판을 깔기 위한 이야기이다. 물론 본편을 시작하기도 전이라 작품을 소개하기에 아무래도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지만, 필요한 과정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작업기. 표상 23-33

대사를 쓰고 정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무영의 입을 통해 풀어내는 당(화공 무리)의 역사라 해야 할지, 화공 양광의 일생이 『와치』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 이야기가 되는 만큼 본바탕의 윤곽을 확실히 잡아놓고 그 위에 대사를 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필요한 내용을 두서없이 나열해 적은 뒤 큰 줄기를 빼고 나머지를 추리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쓰고선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음장의 글귀다. 특히 새로 알게 된 ‘기극하다’란 단어가 전달하려는 뜻과 잘 맞아서 좋았다.

그림에서는, 어느 편이건 구도를 잡고 인물을 배치하는 모든 과정이 시행착오의 반복이지만 특히 30-1이 어려웠다.
무영과 달사의 뒤로 와치가 잠들어 있는 사고가 무게 있게 보이길 바랐는데 적절한 거리감을 알 수 없어서 전체 밑그림만 일곱 번쯤 다시 그려야 했다.

작업기. 표상 12-22

1-11화를 작업하고 돌연 건강 문제로 작업을 오래 미루어야 했다.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마감 후 일주일 만에 머리를 짚고 든 생각은 ‘지금 오는구나.’였을 뿐이다. 급성 빈혈은 주된 원인이 체질에 있고 정도에 따라 심각한 상황까지도 간다. 특히 작품을 시작하기 전 관문처럼 고비가 찾아오곤 한다.
정문. 표상 편을 마친 뒤 확장편­―새김글을 공개했는데, 유독 많은 여백 조각(칸)을 그린 이유와 그리면서 사유한 바를 이야기하고 싶어서였다.

12-22화에서 여러 조각을 할애한 무영의 시선은 그림으로 그려졌지만, 시선의 의미가 글로써 쓰이지는 않았다. 그리는 내내 무영의 속말이 이어졌으나 그가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고, 앞으로도 내지 않을 것이며, 생각으로 드러내지도 않으리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무영이 “나는 혼란스러웠다.”고 고백하는 부분은 작업하면서 가장 동요되었던 지점이다.

작업기. 표상 1-11

『와치』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모 웹툰 플랫폼에서 연재한 데뷔작이다. 작품은 연재 도중 갑작스레 중단됐고, 3년의 계약 기간을 기다린 끝에 2018년을 맞았다. 재시작을 앞둔 그해 9월, 묵묵히 기다려 준 독자들을 떠올렸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정문. 표상 편은 기존에 없던 이야기이며 「종이 위에 피는 꽃」과 「동고림」을 읽고 나서야 전후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구상 단계부터 ‘어느 이른 아침 두 사람의 대화’만을 써서, 새로운 독자들에겐 의문을 남기는 한편 오랜 독자들에겐 지난 이야기 사이에 감추어진 조각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익숙한 낯섦이 남도록 의도한 것이다.
처음 읽는 독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만 그렇게 했다.

1-11화의 첫 장은 산과 논과 숲과 작은 집들로 채웠다. 그 고요한 풍경을 그리면서 나는 비로소 와치의 세계로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5년 전의 내가 그렸던 색을 지금의 내가 자연스레 이어 그릴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은 원고 안에 있었다. 
한 사람의 고유한 언어와 방식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단 사실이 새삼 놀랍다.

대본, 콘티

RECORD 1.2와 1.3이 유독 그림 콘티 단계에 애를 먹인다. 작년에 작업해 둔 분량과 새로운 내용을 취합,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흐름이 제한된 느낌을 받는 것, 창작 세계관으로 대사의 공백이 유독 많은 것이 아마 주된 원인이다.

와치와 어슨은 그야말로 전혀 다르다. 작품 색도 색이거니와, 와치의 인물이며 이야기가 독단적으로 제 갈길 갔던 걸 생각하면…
어슨의 경우 작자의 끈질긴 사고를 요구한다.
그런 차이 때문인지 재미있게도 와치를 연재한 경험은 어슨에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한다.
더구나 기본기의 부재는 늘 나를 원점으로 돌려 놓는다.

거리

빚은을 작업하며 와치 때와는 달라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점은 작품과의 거리감이었다.
와치는 적극적으로 날 이야기 속에 끌어들였고, 나는 부분적으로 그들의 삶을 공유하며 때로는 그들의 자취를 쫓아 걸었다. 이제 돌이켜보면, 나의 위치는 그들의 겹세계에 해당하는 지점이었다.

빚은은 달랐다. 그들은 온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내게 관여하지 않고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하지도 않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덩그러니 이야기와 동떨어진 감각이 낯설었고,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기도 했다.
그렇게 작업을 이어나가는 사이, 어떤 동질감이 나의 위치를 자각하게 했다. 바로 래쉬가 느끼는 외지인의 거리였다.
빚은에서 래쉬는 관찰자 및 기록자로서의 시선을 담당한다. 그가 작품과 연결되는 단 하나의 통로란 뜻이다.

나는 독자들이 그를 통해 어슨을 들여다보며 어떤 이방인의 느낌을 받길 바랐는데, 알고 보니 이야기를 그리는 나 역시도 래쉬를 통해 저 세계를 그려내는 이방인의 위치에 있었던 거다.
이로써 그간 안달해 온 거리감에 대한 고민이 한순간에 불식되었다.

실상

콘티부터 마무리 펜 작업까지 하는 동안 솜으로부터 가장 빈번하게 들었던 평은 마을 부호가 짜증스럽다는 이야기였다. 그 중 하나는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으나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그린 부분이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대상까지 집어낸 예리함이 꽤 재미있었다.
주된 이유는 역시 무엇을 보느냐, 혹은 볼만한 눈을 떴느냐에 관계없이 보인 무엇을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고 이용하는 기만에 있었다. 부호에 한해선 간결하고 객관적인 시선이 아닌가 싶다.
비슷한 맥락으로 확장편 이토 <通> 를 읽은 후 와치에 대해 정도를 넘어 상대를 유도하는 느낌이라 기분나쁘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린 나의 의중은 차치하고 – 덕분에 생각의 여지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