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부로 폰이 정지됐다. 통신비를 스스로 감당하기 시작한 이후 종종 밀리긴 했어도 정지는 처음 있는 일이라 새롭다 할지 올 것이 왔구나 싶기도 하다. 기실 여기에 신경 쓸 심적 여유라도 있는 편이 나았겠지.
작년, 그 두 달여의 시간동안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결국 작업마저 중단하게 만든 위기는 연재를 재개하자마자 들이닥쳐 2주가 넘도록 나를 옭아매었다. 그렇게 후려치면 삭이기까지 긴 감내의 시간을 필요로 하며 내 잘못을 인정하는 과정보다 네 탓이라는 말에 과연 힐난인가 책망인가 곱씹음이 지친다.
매번 그래왔듯 평정심을 가장하여 작업흐름을 되돌린 참이다.
다시 화두로 돌아가 내어주고 얻은 것을 말하자면 우인에의 부분적인 유대일 것이다.
첫번째 그릇 <종이 위에 피는 꽃>의 유훈을 그릴 당시의 나는 최악의 빈혈을 기록했다. 그가 자신의 피를 내어 검은 꽃의 씨앗을 종이 위에 옮겼을 때의 일을 그리던 그 시기에 나 역시도 한계에 몰려 피를 잃었고 그 쇼크로 다섯 차례에 걸쳐 기절했다. 쓰러지면서 머리를 심하게 부딪혀 꽤나 오래 두통을 겪었는데 그나마도 거기서 피가 멈추지 않았다면 두통을 겪을 새조차 없이 전부 끝났을 것이다.
이 경험은 -아직 어떻다 딱잘라 말할 수 없지만- 내게 전에 알지 못했던 그림의 세계를 가르쳤다.
두번째 그릇 <동고림>은 함께 걷는 사람에 대하여, 나에게 있어서는 그 부재를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했다. 그리는 내내 상실감에 사로잡혀 있었고 와치와 진홍의 거리감을 질투했고 부러워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마무리할 무렵 레진코믹스에서 《신기록》을 연재하고 있는 리율님을 알게 되었다.
세번째 그릇은 아직 이야기가 꽤 남아있는 터라 마치고 나서 이어가야겠지만
다만 한가지, 앞선 두 편에서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그 사이에 유기적 관계를 맺었다면 지금은 그들이 그들의 세계에 나를 포함시켜 그리는 사람과 그려지는 사람이 아닌, 그들처럼 이야기를 가진 한 인물로서 살게 만들었다.
부분적인 유대란 여기에 연계된다.
사람은 단지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본을 무시할 수 없다. 그림을 굶으면서 그릴 수는 있더라도 아예 먹지 않고선 그릴 수 없는 것이다.
우인의 그 팍팍한 현실이 온전히 내것일 수는 없으나 양친이 베풀어주는 기본을 이따금씩 셈하고 때때로 제하여 자신이 얼마나 유약한지 본다. 보여진다.
그렇게 1년 8개월에 가까운 시간을 거쳐 고민했던 괴로웠던 기뻤던 뜻밖이었던 과분했던 기대했던 실망했던 오해했던 개선했던 잃었던 배웠던 얻었던 마음 속에 뿌리내린 여러가지가 때로 고집으로 때로 인내로 나를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이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몇 번이고 다시 몇 번이라도 기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