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관점

극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런 인물은 선천적이든 다른 상황 탓이든, 그 성격의 근저에 거의 의도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압도적인 우울함이 숨어 있지만, 그것도 그 인물의 가치를 조금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다. 비극적으로 위대한 인물은 병적인 우울함을 통해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 야망을 품은 젊은이들이여, 명심하라. 인간의 위대함이란 질병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 모비딕, 허먼 멜빌

6.25

마치 차고 푸른 비수가 등골을 살짝 긋는 것처럼 소름이 쫙 끼쳤다. 그건 천지에 사람 없음에 대한 공포감이었고 세상에 나서 처음 느껴 보는 전혀 새로운 느낌이었다.
이 큰 도시에 우리만 남아 있다. 이 거대한 공허를 보는 것도 나 혼자뿐이고 앞으로 닥칠 미지의 사태를 보는 것도 우리뿐이라니,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차라리 우리도 감쪽같이 소멸할 방법이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그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획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 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 예감이 공포를 몰아냈다.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개정판), 박완서 저.

14-337

가난한 자들에게는 인생은 늘 준열하였다. 가진 자에게는 인생은 유희였었다. 찰나주의, 향락주의…… 행복을 희구하는 소박한 마음은 재물로 하여, 권위와 힘에 의하여 썩는다. 그것은 생성하여 노화하고 죽음에 이르는 이치 때문일까.
(…)
소망은 먼 곳에 있고 탐욕은 가까운 곳에 있다. 탐욕은 손에 넣기 쉬워도 진실은 잡기 어렵다. 해서 사람들은 진실을 외면하고 맑은 물줄기에서 탈락한다. 숫자만 기억하고 숫자만 믿으려 한다. 숫자는 질이 아니다. 양이다.
/ 토지 4부 2권 337p

2-200

천지 만물이 시작과 끝이 있음으로 하여 생명이 존재한다고들 하고 탄생은 무덤에 박히는 새로운 팻말의 하나라고들 하고 죽음에 이르는 삶의 과정에서 집념은 율동이며 전개이며 결실이라고들 하고, 초목과 금수와 충류에 이르기까지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고들 한다.

이 갖가지 죽음의 처리를 앞두면서, 헛된 탄생에 삶을 잇는 그동안을 집념의 조화는 참으로 위대하여 옷을 걸치고 언어를 사용하고 기기묘묘한 연극으로써 문화와 문명을 이룩하였다고 하는데 그것은 비극과 희극이 등을 댄 양면 모습이며 무덤의 팻말을 향해 앞뒤걸음을 하는 눈물 감춘 희극배우, 웃음 참는 비극배우의 일상이 아닌지 모르겠다.
/ 토지 1부 2권, 박경리

서문, 2001

작품이 나간 이상 독자에게는 읽을 권리가 있고 이미 작가 손에서 떠난 거라며, 꾸지람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구세대에 속하고 편협한 나로서는 문학작품이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생산되고 소비되는 오늘의 추세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상인과 작가의 차이는 무엇이며 기술자와 작가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차이가 없다면 결국 문학은 죽어갈 수밖에 없다. 의미를 상실한 문학, 맹목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삶,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책이 다시 나가게 되니 마음은 석연찮다. 자기연민이랄까, 자조적이며 투항한 패잔병 같은 비애를 느낀다. 나는 왜 작가가 되었을까.
/ 토지, 박경리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저명한 오스트리아 수필가이자 소설가인 슈테판 츠바이크의 뛰어나고 주요한 작품에서 영화의 영감을 떠올린 앤더슨은 배경과 액자식 스토리 전달 방식만 이용한 것이 아니라 세계의 상실도 물려받았다.
문명의 파괴, 한 시대의 종말, 우리 삶이 우리가 속한 더 큰 역사에 의해 변형되는 끔찍한 방식들…
– 앤 워시번

많은 웨스 앤더슨 영화들처럼 이 영화는 상실을, 우리가 상실에 어떻게 적응하는가를, 혹은 어떻게 절대로 적응 못하는가를 다룬다.
– 매트 졸러 세이츠

종종 이 세계가 물리적 폭력에 의해, 아주 단순한 방식과 저열한 논리를 무기 삼아 돌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일독

화가 반 고흐의 일대기를 날 선 필치로 해부한 평전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는 실로 문제작이 맞았다. “미치광이 천재 화가의 예술적 신화와 비극적 자살”이라는, 몇 세대에 걸쳐 관객의 판타지를 충족시켜 온 매혹적 이야기가 치밀한 두 작가의 손에 걷히며, 인간 핀센트 판 호흐를 정직하게 드러낸다.

개인적으로 이렇게까지 정신을 혹사하는 책은 처음이었다. 핀센트의 끈질긴 편집증이 해묵은 고통을 환기해댔기 때문에, 몇 번이나 읽기를 그만두고 싶었다.
사람의 내면을 고작 한 꺼풀 벗겨내는 것만으로, 막연한 끌림이 대번에 사그라듦을 재차 확인하기도 했다. 인간애에의 회의감은 건재했다.

천 페이지에 달하는 한 달여의 책 여행이었다. 빈 캔버스가 마련됐다.

프롤로그, 광적인 마음

누구라도 핀센트를 ‘내면으로부터’ 알아야만 핀센트처럼 그의 미술을 보고 느낄 수 있다.
19세기 후반 미술계는 미술에 있어서 전기의 역할에 몰두했다. 그 문을 열어젖힌 에밀 졸라는 그림과 화가가 녹아든 “살과 피의 미술”을 요구했다.
누구보다 열렬히 전기의 중요성을 믿었던 핀센트 판 호흐는 1885년에 적었다. “졸라는 미술에 대해 아름다운 뭔가를 말하고 있다. 예술 작품에서 나는 그 사람, 즉 그것을 그린 미술가를 찾고 사랑한다.” 
/ 〈Van Gogh: THE LIFE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 스티븐 네이페 · 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

별까지 걸어간다

인내의 범주에 가장 인접한 욕구는 책 구매욕이다. 책은 그림과 함께 나를 채우는 양식 중 하나이며, 거추장스러운 육체에서 벗어나 어린 왕자의 별까지, 그리고 고흐의 밤하늘의 별까지도 걸어가게 한다.

63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가지는 그림에 대한 고찰이나,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바람의 모습이 닮는 것은 오로지 그림 안에서 허락된 일체감일 것이다.

그림의 눈치를 보는 것이 좋았다. 그림이라는 깊고 검푸른 바다에 휩쓸림이 좋았다. 그림이 가진 세계 속에서 미미한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즐거웠다.

LEON

“Leon, I feel maybe I’m in love. I can really feel it, in here. I feel something like pain in here moving up hazily.”

“You’ve given me a taste for life. I want to be happy, sleep in a bed, have roots. You’ll never be alone again. I love you, Mathilda.”

이 그림, 그 아이

이 그림을 자세히 잘 보아두었다가 여러분이 언젠가 아프리카의 사막을 여행하게 될 때, 이와 똑같은 풍경을 꼭 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혹시 그곳으로 지나가게 되면, 발걸음을 서두르지 말고 별빛 아래에서 잠시 동안만 기다려보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그때 만일 한 아이가 여러분에게 다가와 웃는다면, 그 아이가 황금빛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묻는 말에 결코 대답하는 법이 없다면, 여러분은 그 아이가 누구인지 알아챌 수 있으리라.
/ 어린 왕자 -134-

오직

“아까 말해주겠다던 비밀은 이런 거야. 그것은 아주 단순하지. 오직 마음으로 볼 때만 모든 것이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 어린 왕자 -101-

밀밭

“저기 밀밭이 보이지? 나는 빵을 먹지 않아. 내게 밀은 아무 소용이 없어. 밀밭은 나에게 아무것도 생각나게 하지 않지. 그건 슬픈 일이야! 그런데 너는 황금빛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어.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놀라운 일이 생길 거야. 앞으로 금빛 밀밭을 보면 나는 너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될 거야. 그리고 나는 밀밭에 바람이 스치는 소리를 사랑하게 될 거야…….”
/ 어린 왕자 – 96-

바오밥나무

“그건 규율의 문제야. 아침에 몸단장을 하고 나면 정성스럽게 별의 몸단장을 해주어야 해. 규칙적으로 신경을 써서, 장미와 구별할 수 있게 되면 바로 바오밥나무를 뽑아버려야 하지. 바오밥나무는 어렸을 때에는 장미와 아주 비슷하거든. 그건 조금 귀찮은 일이긴 하지만 쉬운 일이기도 해.”
/ 어린 왕자 -28-

옛날이야기

나는 이 이야기를 옛날이야기를 하듯이 시작하고 싶었다.
“옛날에 자기 집보다 겨우 조금 클까말까 한 별에 어린 왕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린 왕자는 친구를 갖고 싶었답니다…….” 인생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게 훨씬 더 진실된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 어린 왕자 -23- | 셍텍쥐페리 | 좋은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