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 (3)

한 학년 올라가면서는 그림 그리는 애와 처음으로 한 반이 되었다. 자연스레 그림을 더 자주, 더 많이 그리게 되었고 내 그림체랄 만한 스타일도 조금씩 자리 잡았다. 희미한 기억 속 그림체와 지금의 그림체 사이에는 추구하는 방향과 축적된 연습량에서 비롯된 간극이 존재하지만, 묻어나는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왜 분명하지도 않은 머릿속 그림과 비교하냐면, 이 기간에 그린 그림이 남아 있지 않아서다.

초등학생 때 그린 그림들은 엄마가 전부 버려버렸다. 일기장에 그린 그림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았는데 저쪽 집 진열장에, 아직 보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당시에 연습장을 숨기지 않았느냐 하면, 물론 숨겨 놓았었다. 다만 그 장소란 게 아직 어렸던 나한테나 손이 잘 닿지 않는 바구니여서, 대청소를 하던 엄마에게 금세 발각되었고 그대로 쓰레기봉투에 담겨 나갔다.

이후 나는 그린 그림을 전부 오려내 플라스틱 파일에 담은 다음 교과목 필기 노트랑 같이 보관했다.
어느 날엔가 그걸 관심 있는 친구한테 보여준답시고 달랑 들고 나가서는, 중간에 엄마와 함께 귀가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다 그애한테 그림을 한동안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멀리 사는 친구라 몇 달 후에야 다시 만날 수 있었는데, 그 사이에 이사를 하면서 파일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나는 한동안 자책에 빠져 내가 어떻게 해야 했을까, 곱씹다가 체념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