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 콘티

RECORD 1.2와 1.3이 유독 그림 콘티 단계에 애를 먹인다. 작년에 작업해 둔 분량과 새로운 내용을 취합,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흐름이 제한된 느낌을 받는 것, 창작 세계관으로 대사의 공백이 유독 많은 것이 아마 주된 원인이다.

와치와 어슨은 그야말로 전혀 다르다. 작품 색도 색이거니와, 와치의 인물이며 이야기가 독단적으로 제 갈길 갔던 걸 생각하면…
어슨의 경우 작자의 끈질긴 사고를 요구한다.
그런 차이 때문인지 재미있게도 와치를 연재한 경험은 어슨에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한다.
더구나 기본기의 부재는 늘 나를 원점으로 돌려 놓는다.

거리

어슨을 작업하며 와치 때와는 달라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점은 작품과의 거리감이었다.
와치는 적극적으로 날 이야기 속에 끌어들였고, 나는 부분적으로 그들의 삶을 공유하며 때로는 그들의 자취를 쫓아 걸었다. 이제 돌이켜보면, 나의 위치는 그들의 겹세계에 해당하는 지점이었다.

어슨은 달랐다. 그들은 온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내게 관여하지 않고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하지도 않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덩그러니 이야기와 동떨어진 감각이 낯설었고,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기도 했다.
그렇게 작업을 이어나가는 사이, 어떤 동질감이 나의 위치를 자각하게 했다. 바로 래쉬가 느끼는 외지인의 거리였다.
어슨에서 래쉬는 관찰자 및 기록자로서의 시선을 담당한다. 그가 작품과 연결되는 단 하나의 통로란 뜻이다.

나는 독자들이 그를 통해 어슨을 들여다보며 어떤 이방인의 느낌을 받길 바랐는데, 알고 보니 이야기를 그리는 나 역시도 래쉬를 통해 저 세계를 그려내는 이방인의 위치에 있었던 거다.
이로써 그간 안달해 온 거리감에 대한 고민이 한순간에 불식되었다.

실상

콘티부터 마무리 펜 작업까지 하는 동안 솜으로부터 가장 빈번하게 들었던 평은 마을 부호가 짜증스럽다는 이야기였다. 그 중 하나는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으나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그린 부분이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대상까지 집어낸 예리함이 꽤 재미있었다.
주된 이유는 역시 무엇을 보느냐, 혹은 볼만한 눈을 떴느냐에 관계없이 보인 무엇을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고 이용하는 기만에 있었다. 부호에 한해선 간결하고 객관적인 시선이 아닌가 싶다.
비슷한 맥락으로 확장편 이토 <通> 를 읽은 후 와치에 대해 정도를 넘어 상대를 유도하는 느낌이라 기분나쁘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린 나의 의중은 차치하고 – 덕분에 생각의 여지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