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김

이 과정에 대해서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묘사할 수 있을 성싶다.
지난 9일 느닷없이 찾아온 것이 일주일간 기승을 부리자 다시 일주일은 그저 누워서 보내야 했다.
급성 빈혈. 정도를 넘어서면 두통이 인다. 입술의 핏기가 가신다. 피부의 온기가 떨어지고 현기증이 길어진다. 심장 부근이 저리기 시작한다. 속이 메스꺼워진다. 그리고 쇼크로 기절. 첫번째 그릇을 그릴 땐 3일만에 이 단계에 접어들었었다.
여기서 더 가면 죽는구나, 싶은 지점이 꼭 온다. 그러면 아직 그림을 더 하고 싶다고 말한다. 나보다 죽음이 선명해진다. 인간의 가치가 쓰레기처럼 버려진다. 살려달라고 빈다.
피를 담보로 잡혀 묵인이라는 이름의 바닥 위에서 고집으로 그림을 짓는다. 어리석은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