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

작년 12월, 나는 그 집에서 피신할 궁리를 했다. 어디라도 괜찮았다. 그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잠시나마 숨어들어 한계까지 몰린 정신에 숨통을 뚫어주어야만 했다.

도움을 청할 만한 누군가를 떠올리려 애썼지만, 태생부터 무리 속에 섞여 부대끼는 생활을 어려워한 나다. 이제까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친구는 두 사람뿐이고, 친인척을 제하면 일적으로 묶인 사람들 그리고 알고 지내는 작가님 세 분―
자진해서 소외되고 적극적으로 고립된 삶의 방식을 택한 데에, 스치듯 만약을 저울질하는 내 꼴이 우스웠다. 그러나 주위에 사람이 많대도 결론은 달라지지 않을 터다.

정말로, “남의 도움을 보다 절실히 바랄 때에야 비로소 생생하게 피부로 와 닿는 것이다. 기댈 데라곤 없는 비참한 현실 속의 자기 자신이” 말이다.
사람이 절망의 나락 속으로 떨어지는 어떤 시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저 풍랑처럼 시련이 밀려들 때가 아니라, 사투 끝에 간절히 내민 손을 붙잡아 줄 존재가 세상에 없음을 목도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