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변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한동안 자기 자신을 향한 미움이 마음을 휘젓는 양을 가만히 보았다.
이 시기는 불안정하다.
떠나온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돌아선 사람들을 기억한다. 항상 이렇게 사람을 버렸다. 그래, 잃었다기보다 버렸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여러 달 부모님의 연락에 대답하지 않았다. 가족의 경조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어쩌다 마주쳐도 금세 자리를 피했다. 저쪽에서 던지는 모든 시도에 딱딱한 껍질을 뒤집어쓰고 깨트리는 방식으로 상처를 입힌다.
이토록 냉정하고 잔인한 성정은 바뀌지 않았다.

과연 인간의 악의와 선의의 뿌리는 같은가, 다른가. 멍하니 그런 잡념에 빠진다.
시간의 제약 속에서 사람은 주관적, 관습적, 집단적 기준에 따라 선과 악을 판단하고 선의에서 비롯한 선행, 악의에서 비롯한 악행을(선의와 악의는 교차해도 결국 동일하게) 나눈다. 그러나 원인과 결과를 한데 압축할 수 있다면, 인생의 시작과 끝을 멀리서 관전할 수 있다면…
혹은
타인의 삶을 따라 발굴한 명제가 보편적일 수 있다면
어떤 비극들은 종종 확실한 선의의 명령에서 출발한다.

오랜만에 그 꿈을 꾸었다. 항상 달아나다 깨는 꿈, 무서운 얼굴을 마주하고 마는 꿈.
무의식의 저변에서 나는 마침내 용서를 꾸며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