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사랑한 일도, 사귀어 본 일도 없다.
술은 무슨 맛일지, 취하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한 적은 있었어도 연애 감정이니 스킨십이니 하는 것들은 전혀 관심 밖의 무언가였다.
한때는 이성에 특별한 호감이 생기지 않는 이유를 두고 내가 동성애자일까 자문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상정하고 다시 돌아보아도 딱히 짚이는 부분이 없었다. 가벼운 지식을 쌓고 나서는 동성애자보다 무성애자에 가깝게 분류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느 쪽으로도 성적 끌림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나는 무성이란 단어에서 내 유년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모호한 성적 지향 문제도 따지고 들어가면 그리로 연결되는 것 같다.
난 어려서부터 내 성별을 싫어했다. 이차 성징을 겪으면서는 내 몸도 싫어했다. 아주, 아주 싫어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대학생이 되어서도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성별란에서 내 성별을 선택하는 데 거부감이 일고 드물게 다른 선택지가 있으면 꼭 그걸 택한다.
어른이 되어 새롭게 알아진 의외의 사실은 내가 지금과 다른 성별이었어도 똑같이 싫어했으리란 점이다. 어느 쪽이라도 역겹다. 표현이 공격적이지만 실제로. 나는 실제로 자주 역겨워, 라고 머릿속으로 되뇐다.
내가 나를 정의한다면 나는 나를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자신을 부정하면서 타인을 사랑할 수가 있을까.
마음은 가물고 사랑은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