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과 청영 33p 무영, 마루, 풍경 선. 전체 음영.
여러모로 기억에 오래 남을 페이지다.
나는 원래 밑그림과 밑선을 완성하고 확정 짓기까지 원고를 일주일 넘게 묵히면서 몇 차례 수정을 거듭하곤 했다. 그렇게 재검토, 재재재재검토를 거쳐도 막상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 하면 늘 어딘가 불충분한 기분이 들고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런데 33p는 그토록 오랫동안 진행되지 않는 슬럼프였으면서, 10월 25일에 전체 구도의 윤곽이 뚜렷해지고부터 밑그림과 밑선, 선, 음영까지 한 흐름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비유컨대 물에 뜨는 방법을 갓 깨우친 사람처럼, 바다 밑으로 가라앉지 않고 수면의 물결 따라 부유하는 전혀 새로운 방식을, 힘 빠진 작업이란 이다지도 수월하고 후련하구나 하는, 완전한 감각을 경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