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표, 이면

지난 15년 11월 26일, 원고 작업 중에 담당피디님으로부터 짧은 메일을 받았다. 작품의 조회수와 수익을 들어 지표가 낮고 앞으로의 반등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는 내용이었으며, 사실상 일방적인 중단 통보였다. 12월 1일, 연재를 유보해야 했으며 당월 8일 <귀엣말> 편 업로드를 끝으로 레진코믹스에서의 와치 연재는 중단되었다.

18년 1월, 작품 활동을 오래 지속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지금이 아니면 다음 이야기를 그릴 기회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사정을 설명하고 계약해지를 요청했으나 22일, 법무팀 및 유관부서와 조기 해지를 논의해보겠다는 답변에 이어 26일, 계약서에 명시된 일자인 올해 12월 7일에 서비스를 종료하겠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드리는 말

그동안 「와치」의 면면을 진심으로 염려해주신 분들, 문득 홈페이지에 들러 이 작가가 홀로 너무 침울해 있지는 않은지 안부를 물어주신 분들, 연재하는 동안의 모든 어설픔에도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독자 여러분께 새삼 감사를 전합니다.

20170903

「와치」 첫 연재일로부터 4년. 연중된 후 단 한 번도 그리지 않았던 와치를 실로 오랜만에, 담담한 마음으로 캔버스 위에 옮겼다.
레진코믹스와의 계약이 모두 종료되고 작품이 내려지고 나면 어딘가 한구석 자리를 내어주는 곳에서 기껍게 지난 원고를 펴고 싶다.

숨표


쉼표가 없는 곳에서 숨을 쉴 것을 지시하는 기호

끝은 때로 예기치 못한 날에,
이제야 좀 볕을 쬐는가 싶어 수면 위로 등을 내보인 순간에 찾아온다.

세번째 이야기는 나의 삶과 맥을 같이 했다. 닻 내릴 곳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다 끝내 가라앉고 마는 지금조차도.
上편을 그린 세 달의 주간 연재 기간엔 실제로 수십 일을 기대앉아 잤고, 바라는 대로 살아지지 않는 삶이 행운일지 절망일지 묻는 경도를 그려내며 들어야 했던 그날의 진심은 선명한 상흔을 남겼다. 이후 세 달에 가까운 침체와 연재 중단을 거쳐 해명과 운도를 만났고, 율기가 조모께 내쳐지는 실상 마지막 편은 작업 중후반부- 7월 8일 집을 나와, 급히 얻은 한 칸짜리 방에서 마감했다.
어떻게 이 흐름을 거부할 수 있을까. 귀엣말 편을 작업하던 도중 와치의 연재 중단을 논의하게 된 이 거부할 수 없는 일체감을. 지극히 현실적인 현실에 대해 인정하는 우인의 말에 동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고작 세시간 사이에 와치를 유보하기로 결심, 스스로도 놀랄만큼 순순히 수긍하고 마음을 갈무리했다.

그리하여 귀엣말 편 마지막 부이의 물음은 원래의 의도를 넘어 그 칼끝을 내게 겨눈다. 나에게 율기는 그림 그 자체를 상징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끝내 그를, 와치를 난도질하고 만 것은 누구인지,
그림에 가장 필요없는 자는 누구였는지.

실상

콘티부터 마무리 펜 작업까지 하는 동안 솜으로부터 가장 빈번하게 들었던 평은 마을 부호가 짜증스럽다는 이야기였다. 그 중 하나는 직접적으로 말한 적은 없으나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그린 부분이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대상까지 집어낸 예리함이 꽤 재미있었다.
주된 이유는 역시 무엇을 보느냐, 혹은 볼만한 눈을 떴느냐에 관계없이 보인 무엇을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고 이용하는 기만에 있었다. 부호에 한해선 간결하고 객관적인 시선이 아닌가 싶다.
비슷한 맥락으로 확장편 이토 <通> 를 읽은 후 와치에 대해 정도를 넘어 상대를 유도하는 느낌이라 기분나쁘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린 나의 의중은 차치하고 – 덕분에 생각의 여지가 생겼다.

海·雲

이번 화를 작업하면서 몇 통의 메일을 받았다. 쓰여진 각자의 이야기는 달랐지만 그저 이 한마디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라는 말 안쪽에 담긴 마음은 같았다.
나 역시도 그 한마디를 새로 배운 말인양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감사하는 글

와치가 나누어마시는 잔처럼 느껴지는 요즈음이다.
누군가가 준비해 준 그 잔에 가진 것을 따라내고 나니, 하나 둘 찾아와 맛을 보고 때로 자신의 것을 따라 건네준다.

담아낸 무엇을 귀기울여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 보이지 않으나 흔들림없이 전달되는 마음에 위로받는다. 그 사실은 내게 따르는 길을 포기하지 않도록 힘을 준다.
와치를 그릴 수 있어서 기쁘다.

덧붙여 고맙다고 말해줘서 고맙습니다.

휩쓸리다

경도 역시도 애당초의 방향과 상관없이, 내식 표현으로는 “휩쓸렸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큰 소용돌이의 중심에 율기와 우인, 부이가 있고 고호와 경도 두 사람은 약간 떨어진 외딴 섬마냥 그리고 싶었는데 진행을 하면 할수록 주변을 멤돌던 두 사람이 턱하니 중심까지 밀려들어왔다.
다르게 말하자면 관련된 인물 모두의 삶 어느 부분인가는 상처입게 되었단 얘기다.

그날의 일

서광경 中편이 시작됐다.
지금까지 그려낸 과거는 말하자면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 그려내는 입장이면서도 서서히 바닥까지 뒤집어 엎어버릴 생각을 하면 조금 즐겁다.

그날의 일에 대해 따로 적는 이유는 고호의 감정을 기억해두고 싶기 때문이다.
고호라는 인물은 최대한 본편을 겉돌도록 만들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어둡고 불편한 인간 (자체 혹은 본심이라고 말하고 싶다.)이 수면위로 떠오르기 때문에 더없이 가라앉을 흐름의 무게중심을 조금이나마 옮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건 와치에 숨쉴 틈이 잘 없다보니 꽤 신경쓰이는 부분이기도 해서, 고호는 약간 삐딱한 말투에 유아독존이라 해야할지 율기와는 두 살 차임에도 불구 철부지같은 면모를 부각시켜 그려졌다.

그런데 순조롭게 대본을 쓰고 그림콘티를 짜는 중에 고호의 감정이 아무리 해도 갈무리되지 않았다. 나누어 놓은 분량까지 진행은 해야하고 고호에게 할애할 수 있는 컷이 정해져 있음에도 도무지 물러서주지 않는 거다. 고호랑 율기는 내내 함께 자라왔고 서로에 대해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 많긴 하지만 내 편에서 보는 고호는 우의라고 해야할지, 그 무게가 그리 무겁지 않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생각지도 못한 감정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치 자신들이 함께 걸어온 지난 시간이, 나누었던 흔적이 그리 옅을 줄 알았느냐 되묻는 것 같았다.

확실히 이 작업은 제대로 마주서기 전엔 결과를 가늠해봐야 무용지물일 때가 많다.
그건 아마 집을 건축하는 과정과 닮아있지 않은가 싶다. 기초를 다지고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는 과정 동안은 아직 잠잠하다가 어느 정도 움직일 공간이 생겨나면 조금씩 고갯짓을 하고 이리저리 움틀대며 스스로의 지반을 다지기 시작한다. 결국 정신을 차리고 보면 산만할만큼 자유자재로 관절을 움직이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내게 들이밀어 온다. 그러면 나는 토대만 겨우 붙들고 서서 어느 순간 인물들과 협상을 한다.

이번의 고호도 바로 그랬고 덕분에 난 거의 사흘간 고군분투해야만 했다.(그리고 대본과 콘티가 대거 수정됐다.)
초벌을 마치고 스케치에 들어간 그날의 일 남은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로 자책과 후회가 뒤섞인 채다.
떠나보낸 마음에 대해 본편에 더 담아낼 기회가 있으련지 모르겠다.

끌어당기다

깨어있은지 50시간도 넘게 지났다. <문 너머> 편에서 사흘간 잠을 못 잤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꽤 빈번하게도 이야기와 내가 겹치곤 한다. 무겁게는 죽음 앞에 섰던 유훈의 경우가 그랬었고. 공교롭게도,라고 할까.
작가와 작품의 사이엔 논리적 설명이 불가능한 어떤 운명과도 같은 끄는 힘, 끌어당기는 힘이 존재한다고 느낀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자기 자신의 존재를 마주하고 작품은 작가를 깨부수며 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