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 만물이 시작과 끝이 있음으로 하여 생명이 존재한다고들 하고 탄생은 무덤에 박히는 새로운 팻말의 하나라고들 하고 죽음에 이르는 삶의 과정에서 집념은 율동이며 전개이며 결실이라고들 하고, 초목과 금수와 충류에 이르기까지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고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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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갖가지 죽음의 처리를 앞두면서, 헛된 탄생에 삶을 잇는 그동안을 집념의 조화는 참으로 위대하여 옷을 걸치고 언어를 사용하고 기기묘묘한 연극으로써 문화와 문명을 이룩하였다고 하는데 그것은 비극과 희극이 등을 댄 양면 모습이며 무덤의 팻말을 향해 앞뒤걸음을 하는 눈물 감춘 희극배우, 웃음 참는 비극배우의 일상이 아닌지 모르겠다.
/ 토지 1부 2권, 박경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