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하고는 (원래) 머리카락 안 말림 + 얇은 차림 + (혼자 있으면) 난방 잘 안 함 + 창문 열어두고 까먹음 = 감기 걸리기 딱 좋은 세트를 하필이면 기온이 확 떨어져 몹시 추웠던 날 해버린 바람에, 지난주 며칠을 컨디션 난조로 해롱대다 결국 목감기에 걸렸다. 목이 살짝 부었는지 불편한 정도고, 열이 나거나 어디가 아프진 않고 간간이 기침이 난다.
어제는 한 해를 잘 보내기 위한 준비를 예상치 못한 계기로 하게 됐고 오늘은 정리하는 글을 쓰며 보냈다. 내일은 작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겠지.
Author: BE
상반기 목록
1. 시집과 동화책, 참고 서적 다시 읽기. 리뷰난에 좋아하는 문장 모으기. 실은 작품에 대한 감상을 적고 싶고 그럴 목적으로 만든 페이진데 내가 영 딴소릴 해댈까 봐… 물꼬 트기가 쉽지 않다.
2. 와치 첫째 그릇 확장편 마무리. 근데 무영과 청영 (4) 진도가 이상하리만치 안 나간다. 작업을 일정 기간 멈췄다가 다시 시도해도 마찬가지. 일단 다음 주 화요일로 배분해 놓았다.
3. 별첨부록 연재. 올해는 별첨부록 첫 챕터를 마무리하고 싶다. 전체 흐름을 요약정리 중.
4. 어슨 1.5화 콘티 업로드. 그려둔 데까지는 올릴 생각이다.
5. 작업기 마무리. 종이 위에 피는 꽃 편과 무영과 청영 편까지 회차별 작업기를 80%쯤 쓴 상태다. 중간에 삽입할 조각들도 잘라 두었고. 다듬어서 올리기만 하면 된다. 작업 과정 공유는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6. 바탕색 -2-. 작년에 꽤 여러 장르의 웹툰을 읽었고 솜에게 추천받은 작품들도 재밌었다. 그리고 싶은 몇몇을 정해 두었으며 그 첫 순서가 세기말 풋사과 보습학원의 미애였다.
7. 지난 4월에 언급했던 이벤트는 인터뷰였다. 글을 다듬는 과정에서 손을 뗀 바람에 공개 여부도 확실치 않지만 쓰긴 쓸 예정이다.
8. 멤버십 포스트로 뭘 발행할까 하다가 단편 만화를 구상했다. 정식 연재는 아니고 연습 겸, 콘티-밑선 수준으로 작화하고 있다.
해피 뉴 이어
2020년은 7년의 삶을 청산하면서 조용히 막을 내렸고
2021년은 내가 내렸던 굳은 선고를 축출하리란 결심과 함께 시작되었다.
형편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길 바랐지만 그러지 않았다. 8년 차에 닥쳤던 몇 사건들은 오히려 앞선 7년의 압축물인가 싶은 무게로 나를 짓눌렀다. 고질병-나아짐-우울감-나아짐-작업의 비관적 사이클이 뚜렷한 변곡점을 그리며 진행되는 동안은 모든 게 버거웠고, 답습하듯 가라앉길 반복했다.
그러나 얼마 전의 나처럼은 살고 싶지 않았다. 그 하나만이 유일하게 달랐다.
이전까지의 나아짐이 시간의 경과에 따른 일시적 회복에 불과했다면 이해의 나아짐은 바깥에 근거를 둔 지속적 극복이었다.
12월의 글 〈교집합〉은 이러한 변화의 산물이다. 나는 마침내 그림 그리는 사람인 나를 나의 일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수년 동안 분리해 놓았던 한원의 정체성을 이 페이지에 꺼내놓을 수 있었다.
2022년. 새로운 해, 다른 시작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마음이 생경하기만 하다.
드림
해피 메리 크리스마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안녕하세요. 드리는 글은 오랜만이네요. 크리스마스 전부터 올해 마무리 글들을 여러 개 적었는데 때를 놓치고 결국은 (허어) 안부 인사 겸 간단히 올립니다.
한 해 동안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내년에는 새롭게 제 쪽에서 거리를 좁히는 연습을 하려고 해요. 의지하는 법도 배우고요.
2022년은 기쁜 소리들로 넘치는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결산 2021
하루 일기를 꾸준히 썼다. 드문드문 이어진 완전한 공백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날을 채웠다. 1754와 토지를 완독했다. About 페이지 소개말을 새로 적었다. 글 〈교집합〉을 적었다. 1뽀모를 30분에서 25분으로 줄였다.
자료로 쓸 120년 연혁을 스타일 시트로 만들었다. 와치 설정집을 보완했다. 무영과 청영의 일대기를 썼다. 원고에 보조선을 활용해 보았다. 그림을 직업으로 전환했다. 동고림의 확장편을 썼다. 원래 가진 깔끔한 선 스타일이 새롭게 보였다. 공방 페이지를 열고 작업기를 올렸다.
건선이 넓게 퍼졌다. 4월부터 6월까지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생존형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경제 사정을 발단으로 번아웃과 슬럼프가 닥쳤다. 8월 하순경 회복했다. 부고를 받았다. 외할머니께서 입원하셨다.
아버지가 투자 실패로 진 빚 때문에 급전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해왔다. 수중에 가진 돈뿐 아니라 여기저기 빌려서 넣었던 모양으로, 엄마는 이 사실을 아버지가 우리에게까지 문자를 보낸 날에서야 알게 되었다. 미쳤지 않고서야.
인터뷰를 했다. 포인트로 멀티라이너 닙과 잉크를 구매했다. 안경을 새로 맞췄다. 아인슈페너 맛을 알게 됐다.
웹툰 세기말 풋사과 보습학원, 언럭키 맨션, 환상의 용, 누군가의 로섬, 친하게 지내자, 극락왕생을 읽었다.
권고
1. 관심을 가지고 보살핌.
2. 어떤 일을 하도록 권함.
연말에 새 해처럼 돋아난 단어 하나. 갑자기 모든 게 무서워져서 견딜 수 없을 때면 마음 구석에서 길어 올려 다시 한 모금씩 삼키고 삼키고 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너무 가깝지 않게, 그렇다고 아주 멀지도 않게. 나는 독자들과의 사이에 적정선을 그어 두었었고, 되도록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 애썼다. 독립 연재를 시작하고서는 기대지도 기대하지도 않기로 재차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전자는 내 작업이 읽는 사람보다 그리는 사람을 우선하기 때문이고, 후자는 조바심으로 불확실한 관계에 의탁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작품이 나의 약함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깨달은 계기는 반분의 방랑자 시놉시스를 쓰고자 지난 삶을 복기하면서부터였다. 내가 가진 결핍의 틀에 찍어 낸, 그 빈 공간을 대신하는 이야기들.
단지 내게 필요했을 뿐인 이야기라는 지각도 아주 틀린 답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픈 플랫폼을 통해 연재하는 작가의 태도로서는 다분히 회피적이었다.
올 4/4분기 들어 강하게 나를 흔든 자기반성은 바로 이 내향적 이기였다. 오로지 내 아픔에 골몰하느라 네 슬픔을 돌아볼 여력이 없었던, 의도치 않았다 한들 잘못은 잘못일 것이며 우리에겐 대화가 필요했다.
이웃한 사람을 마음 들여 아끼고 싶다. 부족하고 어눌한 말로라도 하나하나 표현하고 싶다.
눈을 돌리고 싶다. 바깥으로, 바깥으로. 저기 멀고도 먼 곳까지. 그렇게 되면 좋겠다.
동력
어째 동력이 미약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 구를 의지는 있으나 기름이 떨어진 느낌. 심적으론 안정되어 있고 자신에게 너그럽기까지 한데, 아직 끓는점에 도달하지 않아 표면상으로만 잠잠해 보이는 것인지 잘 알 수가 없다.
교집합 (4)
그림 그리는 사람들의 세계, 그림 그리는 데 아무런 의문이 없는 세계. 판타지 만화 속 세계. 와치는 내가 오래 바란 이상의 구현이자 역설이었다.
왜 그림에 끌렸을까. 그리고 그 끌림이 왜 나의 유일한 재주일까. 하지도 못할 걸, 타고나지 말았더라면, 그랬다면 끊어낼 수 없는 죄의식에 사로잡힐 일도 없었을 텐데.
간절한 원함만 가지고 살라고, 원하는 대로 살아지지 않는 삶이 삶의 본질인 것을 깨달으라고, 그런 의미일까.
회귀하는 질문들에 대한 해답은 마치 인생에 숨긴 진실과도 닮아서 알고자 한들 알아지지 않고 찾는다 한들 찾아지지 않는 머언 신비일지 몰랐다.
교집합 (3)
한원은 와치의 작가이기도 하다.
2013년, 정식 연재를 앞두고 일찌감치 끝을 단정지어 버린 나는 와치 다음을 기대하지 않았다. 이게 나한테 주어진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 믿었고, 따라서 작가명을 지을 때 자신에 대한 고민은 전연 없이 작품색만을 담아 만들었다.
와치의 원료는 이 땅이니 우리나라를 뜻하는 한, 기반은 한국화에 두었으니 조선 시대 화가의 호에서 딴 원.
즉 한원은 와치를 쓰고 그린 사람이지만 와치를 떠나서는 존립할 수 없으며 와치 역시 부자유한 교집합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작품의 근원은 내가 가진 해묵은 고민과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점철되어 있다.
비주류적 세계관은 곧 치우친 가치관의 반영이며, 이야기는 삶의 궤적을 추적하고 굽이진 동선을 그리면서 진행한다. 내게 맺힌 갖가지 하자와 해소되지 않는 결핍은 창작의 바다에 스미어 새 형상으로 다시 태어난다.
와치는 어쩌면 나와 한원, 나아가 그림을 함께 엮는 매개체인 것이다. 나는 와치로 인해 내 안의 한원과 마주하고 와치를 통해 전에 본 적 없는 그림의 세계를 발견한다.
나를 이끄는 힘, 바꾸는 힘.
내 안에서 그림은 저기 멀고도 먼 사랑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존재다.
교집합 (2)
한원의 정체성은 그림 그리는 사람이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 전반에 나는 나를 온전히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또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떤 길로 향해 간 사람이 후에 되돌아온다 해도 그 길을 가기 전과 같을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내가 가지지 못하는 속성을 대신 한원에 부여한 다음 별개의 인격인 양 구분해 놓았다.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검푸른 타원이 커질수록 내가 바라는 상에 가까워지는 동시에 흰 원에서는 탈락하게 되므로, 속해 있는 집합에서 영영 떨어져 나갈까 두려웠던 나는 회피의 방편으로 한원이란 분신을 내세워 우회적으로 자신의 바람을 실현하면서도 경계하려 한 것이다.
에세이 만화 별첨부록에서 이매탈은 나라는 본체와 작가인 한원을 분리하는 장치이며, 한원의 이름으로 2013년 이전에 그린 그림을 공개하지 않는 건 2012년까지를 본체의 그림으로 분류한 까닭이다.
교집합
나는 나와 작가 한원 사이에 분명한 선을 그어 두었다.
내가 속한 세계가 흰빛의 커다란 동그라미라면 나는 그 가장자리에 걸친 검은색 동그라미고 그림의 세계는 바깥에서 내게 걸친 푸른 동그라미다. 검정과 파랑의 교집합을 내 안에서 그림이 차지하는 부분이라 할 때, 그 검푸른 타원 속 이름 붙여진 원소가 바로 한원이다.
:)
기분이 좋다. 아주 아주 좋다. 구절구절이 정결하고 아름답다.
보수
어제오늘 개인 페이지를 소소하게 손보았다.
세로 메뉴 분할선 위치와 간격, 포스트 제목 글자 크기와 간격, 위젯 간격, 피드 입력란 너비, 버튼 선 굵기, 사이트 구분선 간격까지.
특히 수정하려고 여러 차례 건드렸다가 결국 포기했던 메뉴 분할선을 드디어 아래에서 위로 올렸다. 반응형 웹 특성상 동일하게 적용되는 스타일 시트 설정을 폭에 따라 달리하는 방법을 몰라 내내 방치했던 건데, 솜이 이번에 미디어 쿼리라는 걸 새로 알려줘서 속시원하게 해결을 봤다.
초코칩 쿠키
아침마다 우유 한 잔에 초코칩 쿠키를 하나 먹는다. 가득 박힌 초콜릿을 송곳니로 까득까득 으깨서는 얼른 우유 한 모금을 물고 맛보다가 꿀꺽.
생크림 케이크, 마카롱과 앙버터, 티라미수와 크림 브륄레, 파베 초콜릿. 특히 초콜릿은 다크 초코와 민트 초코를 제외한 거의 모든 종류의 초콜릿을 좋아라한다.
컨디션
무영과 청영 25-33 밑그림, 밑선 작업 중이다. 요사이 선 느낌이 좋아서 진도를 빨리 뺄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가 29,30p 러프 스케치 단계에서 급격히 식었다. 모든 칸에 배경이 들어가는 데다 전체 구도가 많아서 한 흐름에 끝나는 페이지가 없는 것이다….
조각모음
2020년 2월부터 올해 9월까지, 20개월 만에 토지 전 20권을 독파했다. 마찬가지로 완독이 목표인 다른 서적 역시 막바지에 다다랐다.
7월부터 시작한 생존형 스트레칭과 초급 유산소 운동 덕에 기초 체력이 약간 붙었다. 유연성도 살짝 늘어서 허리를 굽혀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앞머리를 짧게, 눈썹 바로 아래 길이로 잘랐다. 원체 얼굴 드러내기를 싫어해서 항상 눈 아래까지 내려오도록 길렀던 것을, 다분히 충동적이었다.
최근 SNS를 통해 사이트로 유입되는 수가 늘었다. 트위터에 딱히 무슨 글을 올리는 것도 아니고 구독자 수도 변동이 거의 없는데 뭐지 싶다.
8&33
한해살이풀처럼 연명하는 심정으로 맞이한 8주년, 작가로서도 개인적인 삶 속에서도 그 의미가 남다른 2021년의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더 늦기 전에 뭐라도 해야지 싶어진 나는 드로잉북을 꺼내 들었다. 언제나처럼 가만히 자축하고 넘어가자고 일러스트 밑그림을 끄적이다 손을 놓고는 몇 달을 보낸 참이었다.
그리고 아주 단순한 계기로, 작년 추석 때 화르륵 타올랐다가 네가? 라는 자조적 비꼼에 단념하고 말았던 리퀘스트 이벤트를 단행하기로 했다. 언제 또 내켜서 이렇게 판을 벌일지도 알 수 없는 일, 또 성격상 흐름을 타지 못하고 제쳐두면 그대로 몇 년은 묵히고 마니 드물게 긍정하는 사이에 밀고 나가자며 재촉한 것이다.
기념 그림의 틀은 숫자 8 모양과 손거울이다. 거울은 전부터 와치의 상징물 가운데 하나로 꼽아 이야기 안에서도 활용한 바 있기 때문에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와치의 복장은 의도하지 않았는데 좀 매니쉬해졌다. 갓끈과 턱시도 조합이 묘하다 할까, 두꺼운 갓끈이 귀엽길래 신나서 그린 것이 뜻밖에 보닛을 연상시킨다.
무영은 특유의 분위기 자체가 중성적인 느낌이다. 그런 인물이라는 요소를 넣은 기억이 없음에도 그려놓고 보면 항상 비슷한 색감이 배어나온다. 얇은 판유리 수십 장을 접합해 만든 단단한 유리창 같은 사람, 그래서 와치의 중심축은 바로 이 사람이구나, 하게 된다.
8주년
〈와치〉 8주년을 기념하며 리퀘스트 받습니다.
9월 20일부터 22일 추석 기간에 그릴 예정이고 기본적으로는 모작의 형태로, 연습 겸해서 가볍게 진행하겠습니다.
신청하실 분은 이미지 파일 한 장, 작품 컷이라면 제목과 캐릭터 이름을 적어주세요. 와치의 경우 원하시는 장면을 첨부하시면 디지털 작업을 해서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파일은 트위터 @Mhnwn 쪽지나 메일 hbleuw@naver.com 편하신 쪽으로 보내시면 됩니다. :)
00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부고를 받았을 땐 슬픔보다 충격이 훨씬 컸다. 한 음절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고 동시에 믿기지가 않았다.
울음을 터뜨렸다면 그건 위선이었을 테고 울지 않은 것은…
먹빛
올 상반기엔 다양하게 아팠다. 뜻밖에 알러지 반응이 올라온다거나 급체를 한다거나 약한 식중독 증세를 겪기도 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호흡 곤란도 몇 차례 있었다.
심적으로는 마침내 한계인가 싶은 지점에 다다랐는데, 나는 언젠가 그림을 그만두게 된다면 그 이유는 집에서 강제하거나 생활고로 무너지거나 둘 중 하나이리라 생각했었다. 무력하게 바닥을 찍으면서 자포자기, 그런 예상이었다. 하지만 회복되지 않는 체력과 스스로 착취하고 착취당하는 생활은 의외의 표적을 끌어냈다.
난생처음 그림 자체가 미워진 것이다. 이제껏 삶을 지탱해온 동력이 사그라드는 듯, 아주 끝장을 내려는 듯이. 냉엄한 현실이 바닥을 치기 전에 형편없는 내 바닥이 드러난 셈이다. 놀랐고, 두렵고 슬펐다. 극단적 충동으로 고생했을 때와 같이 어떤 형태로도 차마 이 마음을 꺼내놓을 수 없었다.
나는 안 되는 사람인 것을 그만 인정하고 전부 접어버리라며 종용하는 목소리, 익숙한 주장은 항상 과거의 실패를 근거로 든다. 부정하고자 할수록 자기 부정의 함정에 빠져 아등바등 맴을 돌게 된다. 등 배가 뒤집힌 벌레처럼.
칠월
이달부터 거의 생존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아침마다 한 시간씩, 시놉시스를 쓰는 날엔 삼십 분씩.
7월 6일, 피검사를 하고 CT와 엑스레이를 찍었다. 검사 결과는 전반적으로 괜찮았고 약을 처방받았다. 빈혈은 역시나, 피를 많이 흘려서 적혈구 크기가 작다고 한다.
7월 7일, 힘없이 가라앉아서 오전 이후로 쉬었다. 밤엔 좀 짜증스러운 문자를 받았다.
병원의 정적인 공기는 내리누르는 느낌으로, 침대 위에 누웠던 그 잠깐 사이에 밀려들던 단절감은 내가 얼마나 유약한 사람인지 돌아보게 했다.
그림자
어둠은 오히려 자연 그대로의 것이고 빛은 새로 태어난 것, 모양 있는 것이다. 그 둥그런 빛 아래라야 비로소 그림자는 진다.
태양을 마주하고 서면 자신의 뒤로 지는 그림자를 이따금 돌아보며 나아갈 뿐이지만, 태양을 등지고 서면 앞을 향해 걸어도 늘 자기 그림자에 매이게 된다.
나의 그림자가 더 검고 더 선명해짐은 나를 비추는 빛이 더 밝고 더 맑아진 까닭이다.
나무
최근 카더가든이란 가수를 알게 되었다. 스쳐 지나듯 본 명동콜링 라이브 영상에 끌렸고, 막 발을 담근 참이라 유명한 곡부터 시작했다. 나무, 꿈을 꿨어요, home sweet home, 파도, 밤새. 드라마 OST인 happy ending은 의외성이 있어서 좋다.
싱어송라이터에, 끄는 듯한 가창 방식이며 무엇보다 독보적인 음색이, 원래도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취향인데 시네마틱하기까지 해서 매료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