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 곡

한없이 더 순해질 테요
그 무엇도 날 가를 수 없도록

프롬의 곡, Water의 한 구절. 물의 순연함이 단번에 와닿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저 ‘테요’란 맺음끝에 담긴 정결한 의지가 한없이 순해지려는 데 있다는 게….

달밤댄싱으로 시작해 찌잉, 반짝이던 안녕, Blue Night, 가장 보통의 저녁, Water까지, 모두 내려앉는 밤에 어울리는 노래들이다.
이어서:
자넷서의 집, 이하이의 Brave Enough, 제휘의 Dear Moon, V의 Sweet Night와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지나가면
세월은 치유의 시를
그대에게 보내리

존박의 Smile.

노동요

Gracie Abrams – Unlearn (Acoustic), Mean It, Brush Fire, Under/Over, Feels Like.
톡톡하면서 조금 까슬한 촉감일 것 같은 목소리, 스크래치, 독특하게 흔들리는 끝음 처리까지. 좋아해 마지않는 음색과 착 붙는 음률로 잘 짜인 곡들이다.

달달한 간식을 때려넣고 손을 움직일 즈음부터는 기분을 띄우기 위한 목적을 겸해 통통 튀는 리스트로 넘어간다:
레드벨벳 – Feel My Rhythm, In My Dreams
블랙핑크 – Shut Down, Ready For Love
비비 – Loveholic’s Hangover (Starring 샘김), Wet Nightmare
휘인 – Pink Cloud, 오후 (Ohoo)
백예린 – 그게 나였네, 너머 (The Other Side)
아도라 – Magical Symphony, Trouble? Travel!
오마이걸 – Dun Dun Dance, Quest
조유리 – Loveable, Rolla Skates

더불어 겨울 시즌송과 캐럴은 거의 안 듣는데 이번에 의외로 좋아진 곡들은 이랬다:
서리 – Cinderella (Radio Ver.)
뉴진스 – Ditto
백예린 – November song

오프닝 곡

사라사테의 카르멘 환상곡(Sarasate : Carmen Fantasy, Op. 25)은 지난 하반기 오프닝 곡이었다. 특히 I. Moderato에서 약간 비장한 도입부와 현을 짧게 쓸며 계단을 내려오듯 낮아지는 멜로디, 두어 개의 현이 함께 쓸리면서 나는 도톰한 소리가 좋다. 음을 따라 바이올리니스트의 경쾌한 팔과 활의 움직임을 상상하면서 들으면 한층 몰입된다.
앨범은 Hilary Hahn의 Eclipse, 트랙 15, 16, 17, 18, 19. 노다메 칸타빌레 OST 앨범 가운데 Orchestra De Nodame Live의 9번 트랙과 번갈아들었다.

또 다른 오프닝 앨범은 Mischa Maisky의 Cello Encores. 특히 1, 2번 트랙은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곡이다. J.S. Bach의 Cello Suite No.1 In G Major, BWV 1007: I. Prelude와 Orchestral Suite No.3 in D Major, BWV 1068 – II. Air.
이런 곡 제목은 어떻게들 줄여 부르나 모르겠다….
이 앨범은 전체적으로 몰아치는 곡이 없고 구성이 잔잔해서 물 흐르듯 감상하기 좋다.

열흘 전까지만 해도 올해 설이 2월인 줄 착각하고 있었던 저는 언제나처럼 조용한 휴일을 보냈습니다. 빈혈로 인한 두통 때문에 달리 무언가 일을 벌이지 않았고, 식사 준비도 마무리도 천천히 해내고 잠은 오래 잤습니다.
일요일 점심에 호박죽에 새알을 넣어 먹었는데 맛있었어요.

(기껏 써놓고는 깜빡한 글. 뒤늦게 올립니다.)

솔방울

정렬한 솔방울 조각을 층층이 포개면서 느릿하게 눌러 그리다가 퍼뜩 놀랐다. 느낌에서 기억으로 넘어갔던 감각이 둔하게나마 돌아와 있었다. 무감하게 시작한 손풀기는 어느 틈엔가 즐거워졌고, 마무리할 즈음에는 원래 선을 어떤 식으로 썼었는지를 떠올려 냈다.

renew year

올해는 아무에게도 새해 인사를 건네지 않았어요. 연말이 되어서도, 크리스마스를 지나 12월 마지막 날 밤을 보내고 새해 첫날을 맞으면서도 별 감흥이 없었거든요.
매년 의식 치르듯 썼던 해넘이글 역시 내킬 때 가볍게 풀어 넘길 생각이었고요. 그런데 뜻밖의 안부 메일에, 부러 들어와 보신 분들도 있으셨던 것 같아서… 아, 적어도 이 페이지엔 인사를 남겼어야 했나보다 하고 한발 늦게 튀어나왔습니다.

염려와 긴 기다림에 미미한 보답도 잘 해드리질 못해서 미안해요. 그래도 종종 떠올리고 초조해하고 돌아오고 싶어 했어요.
이상한… 이상한 말이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항상 건강 유의하시고요.
잘 먹고 잘 자고, 바라건대 새 계절에 다시 만나요.

31분의 14 (3)

술이 입에 맞고 별 이상이 없었다면 나는 가끔이나마 음주를 즐기게 됐을까? 모를 일이다. 그래, 아주 주당이 됐을지도 모르지.

나 맥주 마셔봤어. 무슨 맛인가 싶어서. 식탁에 기대앉아 대수롭지 않은 척 가장한 어조로 고백했다. 엄마는 굳은 얼굴로 날 돌아보았다.
술, 담배, 오락, 외박, 그림, 연애…. 엄마가 용납하지 않은 몇 가지 가운데 내가 끝내 고집한 허튼짓이 있었고, 그 하나를 위해 가진 애정만큼의 죄책감을 져야 했으며, 나머지는 흥미를 채 틔우기도 전에 뿌리째 뽑혀 나갔다.
가끔은 생각한다. 바로 그래서, 덕분에, 그나마, 내 인생이 덜 얼룩지고 덜 더럽지 않느냐고 하려나.

31분의 14 (2)

주류에 가지는 제법 끈질기고도 잔잔한 호기심은, 맛도 맛이지만 취한 느낌이 어떨지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혼자 나와 살 적에 뜬금없이 맥주 한 캔을 샀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비록 3프로짜리 복숭아맛 맥주였지만.
첫입은 거북스럽지 않았고 약간 독특한 탄산 주스 맛이라고 생각하니 괜찮았다. 매트리스에 앉아 딱 절반을 비웠을 땐, 왜 추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독한 술을 마시는지 납득이 갔다. 속에서부터 뜨끈하게 올라온 열이 빠르게 전신에 퍼졌다. 겨울밤이었고, 난방을 켜지 않아 싸늘했던 공기가 딱 좋게 느껴졌다.

거기서 관심을 끊었다. 잘은 몰라도 술이 받지 않는 것 같았다. 열이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이며 발이며 얼굴이며, 미묘하게 붓기 시작해 기분이 나빴다. 남은 반 캔은 냉장고에 두고 한 두 모금씩 나누어 마셔 없앴다.

31분의 14

가끔 예능 프로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이 하루 끝에 주어지는 완벽한 보상이라는 듯, 한 번에 들이켜곤 바로 이거지, 짜릿한 감탄사를 내뱉는 모습과 거기에 공감하는 주변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렇게까지? 저 맥주엔 뭔가 특별한 맛이 있나? 하고 별 의미 없는 궁금증이 도진다.

내가 처음 소주 맛을 본 건 아마, 정확하진 않지만 스물다섯 전후였던 것 같다. 어느 저녁에 식사 준비를 하던 엄마가 고기를 재우기 위해 소주병을 꺼냈고, 식탁에 앉아 있던 나는 맛을 봐도 되냐고 물었다. 엄마는 별말 없이 잔을 꺼내 소량을 덜어주었다. 한 모금 입에 물자마자 퍼지는 그 강한 알코올 맛과 향이란. 병원 맛이잖아. 목구멍으로 넘기자마자 으웨에에 상태가 되어 곧장 이를 닦았다.

그게 개봉한 지 좀 된 거라 그랬는지 어쨌는지는 지금에 와서도 알 수 없다. 이후 기본맛은 다시 마셔볼 일이 없었고 집을 나온 후에야 홀짝 해본 자몽맛 반 모금은 뭐어, 자몽맛 으웨에에였다.

31분의 13

그간의 두드러진 변화라 하면, 그림 그리기에 적당하고도 거의 충분하기까지 한 환경을 갖췄다.
10년이 훌쩍 넘어 낡을 대로 낡은 hp 스캐너(정확하게는 복합기)를 중고로 갈았으며, 12년도에 바꾸고 중간에 새 하드를 장착한 외에는 무엇 하나 건드리지 않았던 삼성 컴퓨터(전원을 작업하기 15분 전에 켜두곤 했다)도 고이 보내주었다.
게다가 무려 07년 초엔가 산 인튜어스3 판태블릿을 액정태블릿으로 교체했다. 구매 당시부터 몇 년은 오히려 거의 사용하지 않다가 데뷔 이후 본격적으로 혹사당한 것으로, 여전히 무리 없이 돌아가는지라 무려 16년을 묵힌 제품 포장지에(!) 넣어 두었다.
12년 말에 구매해 만족스럽게 써먹은 아이패드 4세대도 바꾸면서 이제 남은 유물(?)은 13년도 것인 아이폰5뿐이다.

이 모든 과정이 아이러니하게도 지독한 슬럼프 기간에, 그것도 단 두 달 사이에 몰아치듯 진행됐다. 작업에 치여 보낸 몇 년 내내 간절히 바라 마지않던 위시 리스트의 실현이었음에도 난 그다지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약간 울적했다.

31분의 11

글을 쓸 생각이 딱히 없었다. 지겨운 슬럼프에, 앞서 밝혔듯 여기 올라오는 글들은 어쨌건 작가 한원의 구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데, 올해 대부분의 시간을 나는 작가가 아닌 그저 그런 나로만 보냈으니.
새 작업물을 업로드하고서나 근황 글이든 뭐든 적어 올리지 싶었다. 그림을 향한 메마른 감정은 여전하고 기약도 없으면서, 그게 자신을 향한 독려라 쳐도 글쎄, 무슨 소용이나 있을까.
그간 의욕에 차 뱉은 말들조차 쉽게 미끄러지고 구르다 말뿐인 말이 되어 버렸다. 드물게 긍정적인 의지에 들떠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를 보내고 나면 꼭 그걸 상쇄하고도 남는 우울감과 슬럼프의 담금질이 따라온다. 웬 징크스인가 싶으리만치. 그래서 닥치고 손을 움직이던가, 그러지 않을 거면 그냥 계속 닥치고 있어. 그런 기분이었다.

여기까지가 짧게 휘갈긴 내 입장이다. 이 글들은 그럼에도 이런 동떨어진 페이지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들여다보시는 분들을 위해 썼다. 그리 정제되지 않은 문장에, 며칠을 두고 수정하지도 않을 거고, 그래서 문단 사이에 연속성이라곤 내다 버린, 짜깁기한 모양새의 글줄일 거다. 내가 내 날것의 표현도 내 나름의 솔직함도 싫어하는 이상 이렇게 올렸다가 어느 날 소스라쳐서는 밀어버릴지 모르겠으나.

복선

아, 나는 오늘 나 모르게 내 삶의 부분부분을 유기적으로 이어 온 아주 오랜 복선을 발견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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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카페 구석 자리에 앉아 녹차 프라푸치노 한 잔 시켜 놓고 두어 시간 책을 읽는 게 내 최대 힐링이었는데, 그마저도 할 수 없어진 지가 벌써 2년 반 가까이 되어 간다.

그 대신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컴퓨터 관리와 플러그인 세팅에 약간 재미를 붙였다. 소소한 설정에도 시행착오를 겪고 겪고 하다 풀리고 작동하고 하는 걸 보면 레벨을 깬 기분이 들어 그런가.
새로 설치한 챗 플러그인도 3일 동안 옴싹옴싹 다듬은 결과다. 어떤 옵션을 적용할지 선택하고 다양한 문구를 수정하고 배치하고, 시뮬레이션으로 맞게 돌아가는지 확인도 하고. 기본 제공되는 UI가 워낙에 깔끔하고 예쁜 데다 관리 페이지도 직관적이어서 만족스럽다.
한바탕 일을 벌인 끝에는 이게 바로 수요 없는 공급인가 싶어 웃음이 났다.

오늘은 볕이 적당하고 바람은 선선해서 지내기에 딱 좋았다. 간식으로 먹은 우유 200mL에 첵스 초코도 진하니 맛이 좋았다.

OO

5월 5일부터 무영과 청영 25-33 원고를 다시 펼쳤다. 30p 밑선과 26p 밑색이 진행 중이다. 팽개쳤던 인체 공부와 유산소 운동도 다시 시작했다.

근래 들어 누가 피아노 연습을 하는지 취미 삼아 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오전이나 저녁 적당한 시간대에 자주 서투른 연주 소리가 들린다.
나의 손 풀기 곡이기도 했던 캐논 변주곡의, 다음 음표를 읽느라 손가락이 멈추는 듯 곡 진행이 툭 툭 끊길 때마다 친숙하고 그리운 느낌이 든다. 프로의 연주곡이 집중해서 감상하는 외에 다른 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는다면 아마추어의 어설픈 연주는 머릿속으로 음을 따라가게 만들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도 피아노를 치고 싶어진다.

기억나는 악보는 사카모토 류이치 님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와 리처드 클레이더만의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 뉴에이지 음악도 많이 듣고 연주했었다.

슬럼프

7월 31일 자 포스트에 그림이 미워졌다고 적은 후로 다시 몇 차례의 슬럼프를 지나는 동안, 작게 반짝이던 빛이 스러진 양 더는 그림이 즐겁지 않아졌다. 분명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내 안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빈 시간을 책과 강의로 메우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아직 많은 말을 꺼내 놓을 수는 없지만 2015년 12월에 숨표(v)를, 2018년 12월에 다 카포(D.C.)를 찍었다면 이제 피네(Fine)로 곡을 마칠 차례다.

사랑 (2)

누군가를 사랑한 일도, 사귀어 본 일도 없다.
술은 무슨 맛일지, 취하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한 적은 있었어도 연애 감정이니 스킨십이니 하는 것들은 전혀 관심 밖의 무언가였다.

한때는 이성에 특별한 호감이 생기지 않는 이유를 두고 내가 동성애자일까 자문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상정하고 다시 돌아보아도 딱히 짚이는 부분이 없었다. 가벼운 지식을 쌓고 나서는 동성애자보다 무성애자에 가깝게 분류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느 쪽으로도 성적 끌림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나는 무성이란 단어에서 내 유년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모호한 성적 지향 문제도 따지고 들어가면 그리로 연결되는 것 같다.

난 어려서부터 내 성별을 싫어했다. 이차 성징을 겪으면서는 내 몸도 싫어했다. 아주, 아주 싫어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대학생이 되어서도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성별란에서 내 성별을 선택하는 데 거부감이 일고 드물게 다른 선택지가 있으면 꼭 그걸 택한다.
어른이 되어 새롭게 알아진 의외의 사실은 내가 지금과 다른 성별이었어도 똑같이 싫어했으리란 점이다. 어느 쪽이라도 역겹다. 표현이 공격적이지만 실제로. 나는 실제로 자주 역겨워, 라고 머릿속으로 되뇐다.

내가 나를 정의한다면 나는 나를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자신을 부정하면서 타인을 사랑할 수가 있을까.
마음은 가물고 사랑은 멀다.

사랑

사랑. 이즈음 더 많이 더 자주 숙고하는 주제는 사랑이다. 나이가 찰수록 사랑이, 사랑만이 사람을 아름답게 바꾼다고, 사랑할 때에야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든 타인을 위해서든 인내하고 희생할 수 있는 거라고, 사랑으로 삶은 비로소 가치를 발한다고 믿게 된다.

자가격리

전전주 휴일에 솜은 봄나들이를 다녀왔다. 동행했던 친구가 다음 날 양성 판정을 받았고 그 사흘째 되는 날 아침 솜 역시 양성이 나왔다.

나는 그간 팬데믹 사태 관련해서는 일절 언급을 피했었다. 두 겹이나 바깥의 이야기를 이 공간으로 끌고 들어오고 싶지 않았고 그럴 용기도 없었으며, 재앙이나 다름없는 전염병을 두고 무어라 말해야 할는지 몰랐다.

우리는 비슷한 건강상의 이유로 백신을 맞지 않았다. 접종자인 친구는 고열로 너무 힘들다 해서, 원래가 면역력이 약하고 자주 아픈 솜이 염려스러웠는데 다행히 증상이 덜했다. 발열, 두통에 기침이 나고 가래가 생긴다고, 그래도 목은 별로 안 아프고 약을 먹으면 괜찮다고 했다.
오히려 직전에 몰아친 출혈 후유증으로 내가 정신을 못 차렸다. 이미 숨이 모자란 데다 마스크를 쓰고 있자니 숨 막히고 약간만 뭘 해도 지치고 속이 울렁거렸다. 와중에 확진자 동거인이라 3일 이내 PCR 검사를 받아야 했다. 솜의 검사일 이틀 뒤 아침, 겨우 나갈 준비를 하려니까 상태가 곧장 나빠졌다. 어쩌질 못하고 자리에 누웠다.
솜의 격리 기간 7일 하고도 이틀 사이에 내게는 별다른 증상이 없었다. 열흘 동안 집 밖엔 나가지 않았다. 내일까지 자체 격리할 예정이다.

가벼운 대화 주제 (2) 전개: 노동요

여튼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심장이 튀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늘 무언가를 틀어 놓는다. 작업 시간에는 주로 음악을 듣고 그 외에는 라디오, 팟캐스트, TV 프로그램 등을 연이어 켜서 되도록 사이가 뜨지 않게 한다. (유일한 예외는 책 읽는 시간. 독서할 땐 왜인지 모든 소리가 거슬린다.)

작업하는 내내 음악을 듣는다는 말은 즉 하루의 대부분을 채우는 요소가 노랫소리란 얘기다. 소개 페이지에 적은 대로 내가 가장 끌리는 장르는 트로피컬 팝. 낮고 풍부한 소리 위로 통통 튀는 멜로디가 뛰듯이 흐르는 구성을 좋아라 한다.
노동요로 선호하는 장르 역시 밝고 청량한 케이팝이며 특히 걸그룹 곡이 플레이리스트의 주를 이룬다.

그렇다. 글의 발단과 전개가 매우 뜬금없고 이상하지만! 가벼운 대화 주제로 늘 듣는 케이팝을 골랐습니다. 좋아하는 그룹이랑 앨범, 트랙, 매력 포인트 얘길 할게요.

투 비 컨티뉴…

가벼운 대화 주제 (1) 발단: 쫄보력

나의 쫄보력은 아주 강력하고 여러 방면에서 발휘된다.

기본적으로는 높은 건물, 높고 빠른 놀이 기구에 질색하며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물과 깊은 지하 주차장을 무서워한다. 공포 영화나 피 튀기는 영상은 모두 아웃, 미디어에 잠깐 비치는 수술 장면이라던가 환부 같은 것도 싫어한다. 실은 인체 공부할 때 접하는 사실적인 해부도와 누드 크로키를 위한 타인의 벗은 몸을 보는 것에도 거부감이 심한 편이다.

이외에도 기피하는 자잘한 포인트들이 널렸지만 (정떨어질 수 있으니) 이쯤 하고, 가볍게는 겁 많은 사람 대개가 그렇듯 소리에 반응한다. 어릴 적엔 부모님의 고함 소리,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발꿈치로 바닥을 찍는 소리에 곧잘 놀랐었다.

소방 벨과 경찰차, 구급차 사이렌 소리에는 심하면 약간의 패닉 상태에 빠지기도 하고 초인종 울리는 소리와 문 두드리는 소리, 핸드폰 벨 소리에 가끔 신경질적이 된다. 반응 정도가 불안감에 따라 갈리는 걸 봐서는 청력이 예민하다기보다 심리적 요인 탓이 크지 싶다.

근황

어라. 정신을 차려보니 2월을 건너뛰었다는 인상이다. 심지어는 3월도 하순에 가까운.
지난달에 글을 쓰지 않은 덴 다른 이유가 없다. 12월과 1월에 걸쳐 해넘이글을 여럿 쓰는 바람에 업데이트할 즈음엔 이만하면 됐다는 기분이었고 또 2월에 새 단편을 구상하면서 글 쓸 일이 많기도 했다.

나는 정말로 꽤 많이 가벼워졌다. 혹 한눈을 팔 때도 있지만 그 문제를 책임질 것을 자신에게 요구하지 않게 되었다.
오랜 자기 부정이 이렇게 걷히나 보다.

플랫폼

트위터는 거의 알림 + 드물게 사진이나 그림 업로드용이다. SNS를 잘 활용해보고 싶기도 한데, 나는 그런 쪽으론 (슬프리만치) 아무런 센스가 없다.
딜리헙은 연재처로써 비교적 스탠다드하게 인식하고 있고 작품과 직접 연관된 콘텐츠만 올리려 한다.
포스타입은 좀 더 친근한, 요컨대 블로그에 가까운 용도다. 작품과 작업기는 물론 예전 그림이나 모작도 때마다 올리고 하고픈 말도 자유롭게 쓴다.
가장 접근성이 떨어지는 개인 페이지는 오픈형 사적 공간인 만큼 걸러낸 감정과 소회, 개인사, 근황 등을 풀어놓는다.

플랫폼의 영역을 구분하고 공개 범위를 각기 달리 설정한 까닭은 작품과 작품 외적인 것을 단계적으로 내보이기 위함이다. 나는 작품 바깥 이야기가 많은 편이고 또 그게 필요하다고 여기는 쪽이지만, 작가의 감상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거나 싫어하는 쪽도 있으니 이렇게 나눠 두고 각자가 원하는 만큼만 접하면 괜찮지 않을까 했다.

(작년 6월의 글이다. 초안 일자에 맞춰 올리려다가 강박적이다 싶어 당일 발행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