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메리 크리스마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안녕하세요. 드리는 글은 오랜만이네요. 크리스마스 전부터 올해 마무리 글들을 여러 개 적었는데 때를 놓치고 결국은 (허어) 안부 인사 겸 간단히 올립니다.
한 해 동안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내년에는 새롭게 제 쪽에서 거리를 좁히는 연습을 하려고 해요. 의지하는 법도 배우고요.
2022년은 기쁜 소리들로 넘치는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해피 메리 크리스마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안녕하세요. 드리는 글은 오랜만이네요. 크리스마스 전부터 올해 마무리 글들을 여러 개 적었는데 때를 놓치고 결국은 (허어) 안부 인사 겸 간단히 올립니다.
한 해 동안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내년에는 새롭게 제 쪽에서 거리를 좁히는 연습을 하려고 해요. 의지하는 법도 배우고요.
2022년은 기쁜 소리들로 넘치는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하루 일기를 꾸준히 썼다. 드문드문 이어진 완전한 공백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날을 채웠다. 1754와 토지를 완독했다. About 페이지 소개말을 새로 적었다. 글 〈교집합〉을 적었다. 1뽀모를 30분에서 25분으로 줄였다.
자료로 쓸 120년 연혁을 스타일 시트로 만들었다. 와치 설정집을 보완했다. 무영과 청영의 일대기를 썼다. 원고에 보조선을 활용해 보았다. 그림을 직업으로 전환했다. 동고림의 확장편을 썼다. 원래 가진 깔끔한 선 스타일이 새롭게 보였다. 공방 페이지를 열고 작업기를 올렸다.
건선이 넓게 퍼졌다. 4월부터 6월까지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생존형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경제 사정을 발단으로 번아웃과 슬럼프가 닥쳤다. 8월 하순경 회복했다. 부고를 받았다. 외할머니께서 입원하셨다.
아버지가 투자 실패로 진 빚 때문에 급전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해왔다. 수중에 가진 돈뿐 아니라 여기저기 빌려서 넣었던 모양으로, 엄마는 이 사실을 아버지가 우리에게까지 문자를 보낸 날에서야 알게 되었다. 미쳤지 않고서야.
인터뷰를 했다. 포인트로 멀티라이너 닙과 잉크를 구매했다. 안경을 새로 맞췄다. 아인슈페너 맛을 알게 됐다.
웹툰 세기말 풋사과 보습학원, 언럭키 맨션, 환상의 용, 누군가의 로섬, 친하게 지내자, 극락왕생을 읽었다.
1. 관심을 가지고 보살핌.
2. 어떤 일을 하도록 권함.
연말에 새 해처럼 돋아난 단어 하나. 갑자기 모든 게 무서워져서 견딜 수 없을 때면 마음 구석에서 길어 올려 다시 한 모금씩 삼키고 삼키고 했다.
너무 가깝지 않게, 그렇다고 아주 멀지도 않게. 나는 독자들과의 사이에 적정선을 그어 두었었고, 되도록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 애썼다. 독립 연재를 시작하고서는 기대지도 기대하지도 않기로 재차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전자는 내 작업이 읽는 사람보다 그리는 사람을 우선하기 때문이고, 후자는 조바심으로 불확실한 관계에 의탁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작품이 나의 약함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깨달은 계기는 반분의 방랑자 시놉시스를 쓰고자 지난 삶을 복기하면서부터였다. 내가 가진 결핍의 틀에 찍어 낸, 그 빈 공간을 대신하는 이야기들.
단지 내게 필요했을 뿐인 이야기라는 지각도 아주 틀린 답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픈 플랫폼을 통해 연재하는 작가의 태도로서는 다분히 회피적이었다.
올 4/4분기 들어 강하게 나를 흔든 자기반성은 바로 이 내향적 이기였다. 오로지 내 아픔에 골몰하느라 네 슬픔을 돌아볼 여력이 없었던, 의도치 않았다 한들 잘못은 잘못일 것이며 우리에겐 대화가 필요했다.
이웃한 사람을 마음 들여 아끼고 싶다. 부족하고 어눌한 말로라도 하나하나 표현하고 싶다.
눈을 돌리고 싶다. 바깥으로, 바깥으로. 저기 멀고도 먼 곳까지. 그렇게 되면 좋겠다.
어째 동력이 미약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 구를 의지는 있으나 기름이 떨어진 느낌. 심적으론 안정되어 있고 자신에게 너그럽기까지 한데, 아직 끓는점에 도달하지 않아 표면상으로만 잠잠해 보이는 것인지 잘 알 수가 없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의 세계, 그림 그리는 데 아무런 의문이 없는 세계. 판타지 만화 속 세계. 와치는 내가 오래 바란 이상의 구현이자 역설이었다.
왜 그림에 끌렸을까. 그리고 그 끌림이 왜 나의 유일한 재주일까. 하지도 못할 걸, 타고나지 말았더라면, 그랬다면 끊어낼 수 없는 죄의식에 사로잡힐 일도 없었을 텐데.
간절한 원함만 가지고 살라고, 원하는 대로 살아지지 않는 삶이 삶의 본질인 것을 깨달으라고, 그런 의미일까.
회귀하는 질문들에 대한 해답은 마치 인생에 숨긴 진실과도 닮아서 알고자 한들 알아지지 않고 찾는다 한들 찾아지지 않는 머언 신비일지 몰랐다.
한원은 와치의 작가이기도 하다.
2013년, 정식 연재를 앞두고 일찌감치 끝을 단정지어 버린 나는 와치 다음을 기대하지 않았다. 이게 나한테 주어진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 믿었고, 따라서 작가명을 지을 때 자신에 대한 고민은 전연 없이 작품색만을 담아 만들었다.
와치의 원료는 이 땅이니 우리나라를 뜻하는 한, 기반은 한국화에 두었으니 조선 시대 화가의 호에서 딴 원.
즉 한원은 와치를 쓰고 그린 사람이지만 와치를 떠나서는 존립할 수 없으며 와치 역시 부자유한 교집합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작품의 근원은 내가 가진 해묵은 고민과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점철되어 있다.
비주류적 세계관은 곧 치우친 가치관의 반영이며, 이야기는 삶의 궤적을 추적하고 굽이진 동선을 그리면서 진행한다. 내게 맺힌 갖가지 하자와 해소되지 않는 결핍은 창작의 바다에 스미어 새 형상으로 다시 태어난다.
와치는 어쩌면 나와 한원, 나아가 그림을 함께 엮는 매개체인 것이다. 나는 와치로 인해 내 안의 한원과 마주하고 와치를 통해 전에 본 적 없는 그림의 세계를 발견한다.
나를 이끄는 힘, 바꾸는 힘.
내 안에서 그림은 저기 멀고도 먼 사랑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존재다.
한원의 정체성은 그림 그리는 사람이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 전반에 나는 나를 온전히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또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어떤 길로 향해 간 사람이 후에 되돌아온다 해도 그 길을 가기 전과 같을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내가 가지지 못하는 속성을 대신 한원에 부여한 다음 별개의 인격인 양 구분해 놓았다.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검푸른 타원이 커질수록 내가 바라는 상에 가까워지는 동시에 흰 원에서는 탈락하게 되므로, 속해 있는 집합에서 영영 떨어져 나갈까 두려웠던 나는 회피의 방편으로 한원이란 분신을 내세워 우회적으로 자신의 바람을 실현하면서도 경계하려 한 것이다.
에세이 만화 별첨부록에서 이매탈은 나라는 본체와 작가인 한원을 분리하는 장치이며, 한원의 이름으로 2013년 이전에 그린 그림을 공개하지 않는 건 2012년까지를 본체의 그림으로 분류한 까닭이다.
나는 나와 작가 한원 사이에 분명한 선을 그어 두었다.
내가 속한 세계가 흰빛의 커다란 동그라미라면 나는 그 가장자리에 걸친 검은색 동그라미고 그림의 세계는 바깥에서 내게 걸친 푸른 동그라미다. 검정과 파랑의 교집합을 내 안에서 그림이 차지하는 부분이라 할 때, 그 검푸른 타원 속 이름 붙여진 원소가 바로 한원이다.
기분이 좋다. 아주 아주 좋다. 구절구절이 정결하고 아름답다.
어제오늘 개인 페이지를 소소하게 손보았다.
세로 메뉴 분할선 위치와 간격, 포스트 제목 글자 크기와 간격, 위젯 간격, 피드 입력란 너비, 버튼 선 굵기, 사이트 구분선 간격까지.
특히 수정하려고 여러 차례 건드렸다가 결국 포기했던 메뉴 분할선을 드디어 아래에서 위로 올렸다. 반응형 웹 특성상 동일하게 적용되는 스타일 시트 설정을 폭에 따라 달리하는 방법을 몰라 내내 방치했던 건데, 솜이 이번에 미디어 쿼리라는 걸 새로 알려줘서 속시원하게 해결을 봤다.
아침마다 우유 한 잔에 초코칩 쿠키를 하나 먹는다. 가득 박힌 초콜릿을 송곳니로 까득까득 으깨서는 얼른 우유 한 모금을 물고 맛보다가 꿀꺽.
생크림 케이크, 마카롱과 앙버터, 티라미수와 크림 브륄레, 파베 초콜릿. 특히 초콜릿은 다크 초코와 민트 초코를 제외한 거의 모든 종류의 초콜릿을 좋아라한다.
무영과 청영 25-33 밑그림, 밑선 작업 중이다. 요사이 선 느낌이 좋아서 진도를 빨리 뺄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가 29,30p 러프 스케치 단계에서 급격히 식었다. 모든 칸에 배경이 들어가는 데다 전체 구도가 많아서 한 흐름에 끝나는 페이지가 없는 것이다….
2020년 2월부터 올해 9월까지, 20개월 만에 토지 전 20권을 독파했다. 마찬가지로 완독이 목표인 다른 서적 역시 막바지에 다다랐다.
7월부터 시작한 생존형 스트레칭과 초급 유산소 운동 덕에 기초 체력이 약간 붙었다. 유연성도 살짝 늘어서 허리를 굽혀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앞머리를 짧게, 눈썹 바로 아래 길이로 잘랐다. 원체 얼굴 드러내기를 싫어해서 항상 눈 아래까지 내려오도록 길렀던 것을, 다분히 충동적이었다.
최근 SNS를 통해 사이트로 유입되는 수가 늘었다. 트위터에 딱히 무슨 글을 올리는 것도 아니고 구독자 수도 변동이 거의 없는데 뭐지 싶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부고를 받았을 땐 슬픔보다 충격이 훨씬 컸다. 한 음절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고 동시에 믿기지가 않았다.
울음을 터뜨렸다면 그건 위선이었을 테고 울지 않은 것은…
올 상반기엔 다양하게 아팠다. 뜻밖에 알러지 반응이 올라온다거나 급체를 한다거나 약한 식중독 증세를 겪기도 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호흡 곤란도 몇 차례 있었다.
심적으로는 마침내 한계인가 싶은 지점에 다다랐는데, 나는 언젠가 그림을 그만두게 된다면 그 이유는 집에서 강제하거나 생활고로 무너지거나 둘 중 하나이리라 생각했었다. 무력하게 바닥을 찍으면서 자포자기, 그런 예상이었다. 하지만 회복되지 않는 체력과 스스로 착취하고 착취당하는 생활은 의외의 표적을 끌어냈다.
난생처음 그림 자체가 미워진 것이다. 이제껏 삶을 지탱해온 동력이 사그라드는 듯, 아주 끝장을 내려는 듯이. 냉엄한 현실이 바닥을 치기 전에 형편없는 내 바닥이 드러난 셈이다. 놀랐고, 두렵고 슬펐다. 극단적 충동으로 고생했을 때와 같이 어떤 형태로도 차마 이 마음을 꺼내놓을 수 없었다.
나는 안 되는 사람인 것을 그만 인정하고 전부 접어버리라며 종용하는 목소리, 익숙한 주장은 항상 과거의 실패를 근거로 든다. 부정하고자 할수록 자기 부정의 함정에 빠져 아등바등 맴을 돌게 된다. 등 배가 뒤집힌 벌레처럼.
이달부터 거의 생존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아침마다 한 시간씩, 시놉시스를 쓰는 날엔 삼십 분씩.
7월 6일, 피검사를 하고 CT와 엑스레이를 찍었다. 검사 결과는 전반적으로 괜찮았고 약을 처방받았다. 빈혈은 역시나, 피를 많이 흘려서 적혈구 크기가 작다고 한다.
7월 7일, 힘없이 가라앉아서 오전 이후로 쉬었다. 밤엔 좀 짜증스러운 문자를 받았다.
병원의 정적인 공기는 내리누르는 느낌으로, 침대 위에 누웠던 그 잠깐 사이에 밀려들던 단절감은 내가 얼마나 유약한 사람인지 돌아보게 했다.
어둠은 오히려 자연 그대로의 것이고 빛은 새로 태어난 것, 모양 있는 것이다. 그 둥그런 빛 아래라야 비로소 그림자는 진다.
태양을 마주하고 서면 자신의 뒤로 지는 그림자를 이따금 돌아보며 나아갈 뿐이지만, 태양을 등지고 서면 앞을 향해 걸어도 늘 자기 그림자에 매이게 된다.
나의 그림자가 더 검고 더 선명해짐은 나를 비추는 빛이 더 밝고 더 맑아진 까닭이다.
최근 카더가든이란 가수를 알게 되었다. 스쳐 지나듯 본 명동콜링 라이브 영상에 끌렸고, 막 발을 담근 참이라 유명한 곡부터 시작했다. 나무, 꿈을 꿨어요, home sweet home, 파도, 밤새. 드라마 OST인 happy ending은 의외성이 있어서 좋다.
싱어송라이터에, 끄는 듯한 가창 방식이며 무엇보다 독보적인 음색이, 원래도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취향인데 시네마틱하기까지 해서 매료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다.
손톱을 흰 부분이 보이지 않을 만큼 바짝 깎는다. 어릴 적에 피아노 선생님이 항상 손가락을 둥글게 구부려 손끝으로 건반을 누르라고, 그때 손톱이 건반에 부딪히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하라고 가르친 영향인지 모르겠다. 기억에 늘 손톱을 의식했던 것 같다. 여전히 1밀리만 자라도 신경이 쓰여서 참을 수가 없다. 특히 키보드 두드릴 때 손톱 끝과 자판이 닿는 게 정말 싫다.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버렸다. 어깨에 닿을 만치, 그리 긴 길이도 아니었는데 근 십 년 가까이 시원하게 짧은 머리여서 그랬는지 유독 불편했다.
원래도 몸에 뭐가 거치적거리는 걸 싫어하긴 한다. 손목 발목을 조이는 옷이나 딱 맞는 정 사이즈의 옷은 물론이고 스킨로션도 피부 위에 한 겹을 덮는 느낌이라 답답하다. 핸드크림과 립밤은 무겁고 끈적거려서 더 그렇다. 춥고 건조한 겨울이면 손등이나 입술이 거칠거칠 갈라져서 아픈데도 그냥 참고 버틸 정도다.
원고 열네 장을 아등바등하려다 중간에 확 지쳐서 질질 끌 느낌이, 아니 강한 예감이 든다. 일단 밑그림은 24p까지 이어서 그리되 힘들 것 같으면 중간에 흐름이 끊어지더라도 20p에서 마무리해야겠다. 오늘의 진행 상황은 스케치가 24p, 밑그림이 17p, 밑선이 14p. 내일 15p 밑선을 끝내고 선 단계로 들어가서 다음 주엔 밑색을 시작하고 싶다.
팬케이크를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지만 가장 자주 만들어 먹는 음식이다.
볼에 계란 세 개를 풀어 휘핑기로 마구 저은 다음 우유 400밀리를 붓고 작은 거품에 표면이 덮이도록 또 젓는다. 팬케이크 믹스 500그램을 체에 거른다. 고운 가루를 내면 섞을 때 덩어리가 덜 진다.
팬을 달구고 버터를 녹인다. 동그랗게 퍼진 반죽 표면에 둥근 기포와 함께 달달한 향이 올라오면 뒤집어 준다. 중심부부터 가장자리까지 폭신하게 부풀고 테두리는 살짝 바삭한 정도가 좋다. 꿀이나 연유, 초코 시럽, 아이스크림을 올려도 좋지만 보통은 그냥 먹는다.
최근에는 차갑게 굳힌 반죽을 수저로 담뿍 떠 한 입 거리로 부치는데, 푸딩처럼 형태가 무너지지 않은 채 그대로 팬에 안착하는 걸 보면 기분이 나아진다.
이번 회차는 평소보다 페이지수가 많아서 걱정이다. 한 장 추가될 때마다 작업 시간은 자비 없이 늘어나니 말이다. 분량 따라 어중간하게라도 끊고 싶은데 인물들 감정선이 소강하는 지점이 분명해 보여서 그럴 수가 없다.
오늘자로 24p 가벼운 배치가 끝났고 밑그림은 11~20p까지 들쑥날쑥 그렸다. 내일은 밑선을 시작해야겠다.